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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여가 지난 6월 16일 첫 돌을 맞이하여 셀프로 사진을 찍고 양가 직계 가족만 모여서 식사를 했다. 17일이 일요일 이어서 하루 전날 생일 잔치를 열었다. 요즘엔 첫 돌의 의미가 예전같지 않다지만 그래도 부모의 입장에선 엄청 대견하고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그렇다. 옛날같이 1년 이전에 사망률이 안 높다해도. 영유아돌연사 확률은 1년 미만이 대부분이라 한다. 돌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제 엉금엉금 기는 모습을 보지 못하여 아쉽긴 해도 어깨와 팔을 들썩이며 중심을 잡으려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공원에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귀여움에 찬사를 보낸다. 낮을 안 가려 더더욱 이쁨을 받는다. 앞으로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배변훈련과 식사 습관을 무사히 훈육할 수 있을지. 아프지 않은 것만 해도 대견하지만 무언가 자기주장이 거세지는 아들을 보며 마음을 다 잡는다. 요즘 일련의 어린이집 사건 사고를 듣다 보면, 너무나 안 쓰럽다. 세상만사 고해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 대는 세간의 모습이다. 부디 어린아이들이 밝고 행복하게 클 수 있도록 염원한다.

Going to Texas 3

매일 아침이 정말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아침에 일어나는게 힘들지 않다. 더더욱 텍사스의 아침은 탁틔인 풀밭에 맺힌 이슬이 싱그러워, 매일 촉촉한 풀을 밟으며 아침을 먹으로 가는게  즐거웠다. 아침의 커피와 사과는 몸을 깨운다. 맑은 공기와 뜨거운 샤워로 하루를 연다. 한낮의 더위가 오기전 이 아침이 유독 그립다. 이런 아침이라면 전원생활의 무료함은 절대 없다. 하늘과 땅. 새와 별이 마음을 분주하게 했다. 더불어 언어의 곤혹이 쉼없이 이어졌다. 언어로 인한 정신적인 퇴행은 쉽게 적응하기 힘들었다. 나는 노출되어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숨고 싶었다. 한달이 지나니, 몸은 둔해져 있었다. 점심, 저녁 식사를 샐러드 바 위주로 바꿨다. 채소 위주로 식사하니 몸은 확실히 가벼워진다. 이때 즐겼던 조깅은 너무나 완벽했다. 달리기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그리고 이상기후도 즐거움의 한 몫 이었다. 유독 그해는 비가 많이 오는 거라 했다. 그렇게 많은 천둥과 번개가 치는것도 신기하고 토네이도가 지나간 자리는 분노한 킹콩이 지나간 흔적 같았다. 그날도 하늘이 범상치 않았다. 세찬 바람과 저 멀리 뭉텅구름에선 번쩍번쩍 난리도 아니었다. 비가 흩내렸고 들판에 나오니 머리위 낮은 구름도 요동쳤다. 달리기 구간엔 나무 하나 없는 들판을 한동안 지나야 하는데, 번개 맞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참 스릴넘치는 달리기 였다. 경이로운 대 자연의 작용을 몸으로 만끽하며 죽지 …

하와이 O'ahu

마우이가 제주도 같은 느낌이었다면 오하후는 부산 같은 첫 인상을 받았다. 호놀룰루 공항에서 와이키키에 위치한 트럼프 호텔을 찾아가면서 본 풍경은 번잡했다. 차도 많고 곳곳에 빌딩 건축 현장이 포진해 있었다. 처음 부산의 해운대에 왔을때와 비슷했다. 나른한 해가 저무는 와중에 호텔에 도착했다. 역시나 여기도 전통 목걸이를 차에서 내리자마자 목에 걸어 주었다. 보기엔 이뻐 보이나 코를 갖다 대면 이상한 꼬린내가 났다. 와이키키 해변의 수많은 호텔중, 트럼프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음식 조리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고 비교적 최신 건물이라는 점 이었다. 와이키키의 호텔들은 가격에 비해 건물이 낙후된 곳이 많다고 한다. 호텔의 로비가 1층이 아니어서 내리자 마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고급 호텔이지만 일본적인 실용이 곧곧에 드러난다. 미국적인 호텔 느낌인 크고 넓직넓직한 것의 반대였다. 호놀룰루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일본과 미국이 섞여 있는 느낌이 도시의 곳곳에 드러나 보인다. 버스의 행선지 표시도 일본어가 주된 표기일 정도다. 아마도 이 트럼프 호텔은 일본 관광객을 위한 컨셉의 설계인 모양이다. 3일 동안 있을 이 호텔에 미리 주문한 물건들의 박스를 찾고 정리를 하다 보니 또 하루의 석양이 지고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와이키키 해변을 걸으려고 부랴부랴 나갔지만 호텔 로비층을 구경하느라, 해변에 나가니 이미 어둑했다.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쭉 …

하와이 Maui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갔다. 알로하! 하와이. 언제나 설레이고 기분 좋은 단어 이다. 꿈꾸던 일을 회상하니 인생이 한깟 장자의 호접몽의 말마따나 내가 하와이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나비 꿈에 사람이 된 내가 나온 것인지, 피아의 구분이 없어진 지점에서 또다시 꿈을 꾼다. 언젠가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꿈같던 행적을 추억한다. 일주일간의 여행은 왠지 시차 적응과 긴장의 급격한 해소 등등, 완벽한 환경 변화와 더불어 정신이 나비처럼 부유했다. 팔랑팔랑 달콤한 첫날밤의 노곤함을 꿀 같은 시간으로 채웠다. 사실 내가 꿈꿨던 신혼여행은 안나푸르나 트레킹 같은 여행 허니문 이었다. 김어준씨의 책을 읽고 든 생각이었다. 신혼여행의 백미는 인생의 달콤쌉싸름한 길을 미리 맛보는 것이라고.. 현실을 벗어난 달콤한 휴양 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출발선에서 생의 이상과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여행을 원했다. 그러나 당연히 나의 이상은 관철되지 않았다. 그냥 마음속 이상이 일축되어도 이런 상상을 하는것이 즐거웠다. 전세계 어디로든 우리는 갈 수 있었고 함께 했다. 장소나 방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연을 같이 맛 보기 위해 하와이를 택했다. 신혼여행지도 일종의 유행이 있다. 하와이 이전에 칸쿤과 크로아티아가 선호 되었었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하와이는 언제나 신혼여행의 성지 같은 곳이다. 따듯한 기후 탓이 크다. 건기와 우기가 있다지만 태평양 한 복판의 무역풍은 언제나 …

Going to Texas 2

이 길을 달리고 대지를 음미하며 숨을 고르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행복했다. 태양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황금빛으로 변할때 이 땅의 모든 생명이 기쁨으로 물결쳤다. 빛과 어둠 생성과 소멸의 교차점에서 자연의 환희를 경험한다. 이토록 넓은 대지에서 덩그러니 홀로 달리다 보니 그 옛날  살았을 인디언 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아메리카 들소와 원주민들이 이렇게 한가롭게 들판을 거닐었으리라. 영화나 사진속의 인디언들의 이미지가 아닌, 내가 처음 본 만나 본 인디언은 이랬었다. 십여년 전 유타주의 윈도우 록 이란 지명의 제일 큰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잔 적이 있었다. 필연히 이곳을 들르게 된 이유는 연료 경고등은 들어왔는데 찾아간 주유소는 폐쇄되었어서 궁여지책으로 지도상 가장 가까운 마을인 윈도우 록 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막의 인디언 보호구역내 다 쓰러져가는 트레일러들이 띄엄띄엄 널부러져 있었고 두려움에 점점 눈물이 쏟아질 심정이었다. 황폐한 이런 길 상에서 차가 선다면,, 마음이 다급해서인지 가속 페달을 더욱 밟게 되었는데 이성의 한켠에선 기름이 더 소모될거야. 이러다간 꼭 좀비들이 출몰할듯한 데서 밤을 세워야 할거야. 감정의 폭발이 극에 달할 무렵 조금은 마을이 눈에 보일 듯 싶더니, 또 하염없이 가야 했다. 지도상의 손톱 반 만한 거리가 이렇게나 길 줄이야. 이런 망할. X 됐다. 를 연발할 무렵. 주유소와 마트, 몇몇 가게들이 …

Going to Texas 1

텍사스의 드넓고 탁 틔인 들판을  처음 보았을 땐 황량함 그 자체였다. 십여년 전, 나는 텍사스 주, 북부 (프라이팬 손잡이 처럼 튀어나온 모양이래서 팬 핸들이라고 불린다) 를 자동차로 지나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는 동안에 본 것이라곤 광활한 황토색 땅 위에 펼쳐진 거대한 소 사육장. (푸른초원의 목장과는 사뭇 다른) 과 수많은 석유 시추기가 끄덕대는 풍경이었다. . 셀 수 없는 쇳덩이 탑들이 군집을 이뤄 펼쳐졌다. 이것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의 처참한 생활상과 함께 미국의 맨 얼굴 이자 이면의 진실이었다. 탐욕적인 속내의 풍경이리라. 거대함, 막대함, 비인간적. 지구의 풍경이라기 보단 외계의 모습같은 기이함에 몸서리 쳐졌다. 자국내에서의 석유 생산량도 내가 본 풍경처럼 많을 텐데 중동에 개입하여 석유 이권에 개입하는 꼴 사나움. 쯧쯧 있는 놈이 더 한다는 씁쓸함이 입맛을 적셨다. 가축이 아닌 사료처럼 생산되는 소들의 거대한 수용소 역시. 몇일 내내 퀭한 눈으로 시속 100킬로미터로 멀리서나마 스스슥 지나쳤지만 그 광경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훗날 뉴스에서 미국산 소의 광우병 우려에 대한 자료화면속의 영상과 비슷했다. 다시 방문한 미국에서, 텍사스주에 3개월을 체류했다. 십여년 전 내가 보았던 텍사스 와는 정 반대의 곳 이었다. 희뿌연 인천공항을 뒤로하고 쾌청한 달라스 포트워스 공항에 13시간만에 착륙했다. 내가 절실하게 느낀건 예전같지 않은 비행기 타기의 힘듬이었다. 이코노미클래스 …

Why do I feel the moments

20대 후반에 참선을 배웠다. 누누이 노력한 바, 좌선을 하면 오래지 않아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고 한동안 텅빈 자아의 몰입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이 훈련을 방 안에서의 명상 뿐 아니라 카메라를 든 모든 순간에 적용시킨다. 마주치는 세상에 자아가 있는 그대로 반응하는 것이다. 내 감각은 판단의 여지를 두지 않고 삶의 순간에 개입한다. 수시로, 명징하게 찍어서 정지 시키고자 하는 간절함이 솟구친다. 찍는 그 순간. ‘나’는 없어진다. 대체로 조리개는 조이고 셔터 스피드는 최대로 흔들리지 않는 세팅으로 제한을 건다. 조리개와 셔터만으로 최대한 단순하게 조작한다. 그래야만 삶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에 잠시  머 물 수 있다. 거리 사진의 핵심은 매 순간 실패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것이다. 나는 보았지만 찍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벗어나 시간의 흐름속에서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다. 베를린에 머물면서 거리 사진과 참선을 병행했다. 여행지에서는 피곤하지만 각성의식이 첨예하기 때문에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거나 진솔한 자신과 대면할 기회가 많아진다. 나에게 깨어있다는 것은 사진으로 소통하려는 의지이다. 세상의 무심함을 끊고 몇 초 간의 프레이밍과 셔터누름은 살아있음의 희열을 가져온다. 나의 결정적 순간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나는 계속 사진적 수행을 실행 할 것이다. 사진 클릭해서 감상해 주세요

In God We Trust

In God We Trust 이것은 미국의 화폐에 새겨진 문구이자 국가의 공식적인 모토이다. 2015년 3개월 동안 텍사스주의 교회 공동체에 머물렀다.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미국의 근간이고 오늘날 텍사스와 뉴욕은 이를 대표하는 도시 일 수 있다. 십여년만에 다시 미국을 방문하면서 사진을 처음 시작했던 마음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내가 가진 지식, 테크닉, 미국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다 내려놓고 마주하는 대상에 충실하고자 했다. 35미리 소형 디지털 카메라와 표준 화각의 렌즈만을 가지고 사람들 속에서 삶의 다양한 표정을 포착하려 노력했다. 삶의 우연에 나를 온전히 맡기면서 타인을 통해 나를 바라보았다. 결국 모든 사진은 셀프 포트레이트 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일련의 사진을 편집하다 보면 내가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들이 말해진다. 친절하지만 개인적이고, 관계 지향적이지만 진솔한 관계에 목말라하는 미국인의 모습들. 간혹 마음이 모든 긴장에서 내려놓은 어느 순간. 그 틈으로 삶의 진면목이 나타났다. 언어. 인종. 문화권을 넘어 그 짧은 순간 완벽하게 통했다. 이 사진 묶음은 여기서 소개된것 말고도 100여장 이상 되지만 어떤 컨셉과 개념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거리 사진의 즉물적인 감각으로 촬영되어진 잼(자유 연주)에 해당 된다고 본다. 사진 눌러서 감상하세요.

4 days Kyoto in Japan. 교토 여행기

  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러나 이렇게 여행기를 쓰는건 왠일로 오래 걸렸다. 할 말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게으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억울한 기분이 든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3년 동안 내 손끝에 익숙했던 노트북이 어느날 갑자기 뻗어버렸다. 故신해철님이 사망한 다음날 이었다. 그날 아침 슬픈 심정으로 유투브의 토크쇼 출연분을 보던중 화면이 피식~ 암전이 되었다. 참담한 기분이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무언가 변화를 가져왔다.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수리비가 무려 120여만원 이었다. 메인보드를 갈아야 한단다. 정든 기기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었다. 일단 한달 동안은 필히 노트북이 필요해서 새로 주문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일본에서 사온 13인치 맥북과, 고장나 구석에 방치된 정든 15인치 맥북이 다시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다. 애플에서 그래픽 결함을 인정하고 무상수리 프로그램이 얼마전에 시행되었다. 그동안 쓰던 컴퓨터로 글을 꼭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은 쓴다는 건 나름의 어떤 제의식이 있는 것도 같다. 또 이런일도 있었다. 홈페이지와 티스토리 블로그를 워드프레스 홈페이지로 통합하려는 계획을 실행했고 완성했다. 그러나 곧 데이타베이스가 꼬여버려서 에러 메시지만 보여주었다. 서버호스팅업체가 외국이라 이런 전문분야를 직접 해결한 엄두가 안났다. 그래서 구축한 사이트를 폐쇄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든것이다. 이러다 보니 어떤 리듬, 그러니까 글을 쓰는 습관이 와해됐다. 사실 더 큰 이유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