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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달

한율이가 태어난지 열 달이 됐다.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이건 꿈과도 같은 일 이구나. 우릴 닮은 아기가 매일 아침 아장아장 기어와 머리맡에서 일어나라고 손을 휘두른다. 피곤에 쩔어 무거운 몸을 일으키면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한 번도 아프지 않은 아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요즘 티브이엔에서 방송하는 선다방을 처음부터 보게 되었는데, 첫 방송은 시큰둥하게 또 짝짓기 프로그램이군 하며 무덤덤하게 보았다. 그러다 지난 주말 방영분을 보다가 빵 터지게 웃겼고 설렘이 전염되는 듯한 재미를 느꼈다. 동화작가인 여자와 웹툰작가인 남자의 만남은 방송이래도, 설레이게 순수했다. _ 여자 : 저는 예술가 부부가 꿈이에요 _ 남자 : 저도 예술가 인가요? _ 여자 : (웃으며) 그럼요! 당연하죠. _ 남자 : 저는 술, 도박, 여자 안 합니다. _ 여자 : 저도 남자 안 합니다. _ 남자 : (수줍게) 이제 하셔야죠. 자리가 마무리 될 무렵, 고민 상담 쪽지에 남자는 ” 감정표현이 너무 서툴러요” 라고 썻는데 잠시후 다시 꺼내 아랫줄에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라고 추가했다. 뭔가 멀지 않은 과거가 까마득했다가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런 인생일대의 사건을 거치고 이런 아기를 얻었다는 마법은 참 경이롭다. 인연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작용이 오늘날 인류를 지탱하게한 원동력이다. 출연자들의 성공과 실패에서 지나간 내가 보였다. …

파파

요즈음 회기된 과거의 기억이 수시로 내 가슴을 침범한다. 전혀 의도적이거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아기를 보다보면 문득 내 어릴적 기억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잔잔했던 수면위에 해녀의 거친 숨비소리가 갑작스레 터지듯, 평온한 현재는 과거와의 대화로 이어진다. 특히나 나의 아빠, 아버지와의 많지 않은 일화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울고 있었다. 단지 도넛을 먹고 싶다는 땡깡부림에 아빠는 나를 달래며 버스 정류장 가는 길의 작은 빵집엘 데려갔다. 홍콩 뒷골목의 허름한 가게가 연상되는 이미지가 선명하다. 아마도 네살 다섯살 무렵의 나에겐 쇼윈도의 불빛들이 몽환적으로 보였다. 그것은 과거를 낭만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도넛은 퍽퍽했고 달았다. 나는 도넛을 먹고 싶은게 아니었다. 아빠의 사랑을 갈구하느라 참았던 서러움이 터진것이었고, 그 울음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도넛을 먹고 싶다고 둘러댔던 것이다. 크고 따듯한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그제서야 마음이 가라앉았다. 단편적인 기억의 진실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를 결론적 의구심으로 말하자면, 사랑을 주고 받는 행위 과정의 감정적 불일치를 자각했기 때문이다. 문득 아들에게 사랑의 표현을 쏫으며 나는 동시에 나와 아빠의 관계를 회상하게 되었다. 연년차였던 바로위 작은 누나는 어릴적 건강이 안 좋았기 때문에 아빠는 유독 작은누나를 이뻐했다, 작은누나를 안아주는 만큼 나는 곁에서 부러움과 기다림의 기대심에  사로잡혔다. 아마도 그러한 것들이 쌓여서 어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