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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상화원

일요일 아침은 반음 풀어둔 기타줄의 텐션과 비슷하다. 울림은 깊고 소리는 부드럽다. 아랫배에  힘을 꽉 주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새벽에 가까운 시간에 일어나는 것을 좋아한다. 창밖의 어스름이 걷히고 사이언 색감이 농후한 거리를 내려다 본다. 모두가 무장해제된 시간에 습관처럼 노트북을 킬까. 책을 펼칠까. 잠시 고민해 본다. 잠시 웹 브라우저를 열어 보기로, 간밤에 세상은 안녕하셨는가가 궁금하다. 대번에 포탈사이트 일면에 소개된 죽도 상화원의 포스팅을 보았다. 작은 섬 전체가 하나의 공원으로 이루어졌단다. 듣도보지 못한 관광지 였지만 오호 이런데도 다 있었네 하는 발견의 기쁨이 컸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우연히 이곳의 소개를 보니 필연적으로 이곳을 가야될 것만 같았다. 마침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모처럼 날씨가 환상적으로 좋았다. 올림픽 대로에 나서니 시정이 좋아 북한산이 선명했다. 오늘 같은 날은 어디를 가도 5월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도로는 막힘없이 고속을 유지했다. 우리는 2시간 여 만에 대천 IC에서 빠져 대천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드넓은 해안가에 서서 바닷바람을 맞고 파도소리를 들으니 작은 반도 나라의 이점이 이런것이 아니겠나 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여행으로 바다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 할 만 한 것이 틀림없다. 땡볕, 하지만 아직 공기는 습하지 않아서 좋다. 다시 남쪽 무창포 방향으로 오분 …

수덕사

나의 첫 수덕사 방문은 911 테러의 기억과 함께 한다. 대학생때 다른 과의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사진 촬영 요청을 받았었다. 수덕사에서 오랜 문서를 촬영해 달라고. 나는 약속의 안전을 위해 하루 전날 천안에 자취하는 친구집에서 하룻밤 자고 수덕사로 가기로 했다. 친구 집에 도착해 씻고나서 TV 채널을 돌려보다가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너무나 충격적인 영상은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영화보다 더한 참혹한 현실에 그날 밤 눈이 쉽게 감겨지지 않았다. 뒤숭숭한 기분으로 잠을 잤지만 다음날 아침은 의외로 상쾌했다. 수덕사로 가는 길은 너무나 고요했다. 가을 문턱의 공기가 닭살을 돋구웠다. 평일의 수덕사는 너무나 평온했다. 처음 와 봤지만 단숨에 마음에 드는 장소라 느꼈다. 지금은 그곳이 정확히 어딘지 모르겠다. 교수님 일행을 만나 쫒아 들어간 곳은 비밀의 집처럼 대나무가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한옥집이었다. 작은 마당과 집 한채는 큰 절의 부속건물이라기 보단 독립적인 밀실같은 곳 이었다. 깊은 산속이 아니었는데도 세상과는 유리된 고요한 적막감이 한층 배가되었다. 단번에 번뇌가 사라지고 평화로운 마음이 깃들었다. 그곳은 아마도 비구니 스님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노스님을 접견하고 마침 점심 공양때라 밥상이 들어왔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의 식사라 다소 긴장했지만 밥이 너무 맛있어서 침묵속에서도 너무 맛있어요를 연발했다. 밥도 밥이지만 너무 아름다운 한옥집 이었다. 대나무벽 사이로 햇빛이 격자무늬로 쏫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