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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

요즈음 회기된 과거의 기억이 수시로 내 가슴을 침범한다. 전혀 의도적이거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아기를 보다보면 문득 내 어릴적 기억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잔잔했던 수면위에 해녀의 거친 숨비소리가 갑작스레 터지듯, 평온한 현재는 과거와의 대화로 이어진다. 특히나 나의 아빠, 아버지와의 많지 않은 일화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울고 있었다. 단지 도넛을 먹고 싶다는 땡깡부림에 아빠는 나를 달래며 버스 정류장 가는 길의 작은 빵집엘 데려갔다. 홍콩 뒷골목의 허름한 가게가 연상되는 이미지가 선명하다. 아마도 네살 다섯살 무렵의 나에겐 쇼윈도의 불빛들이 몽환적으로 보였다. 그것은 과거를 낭만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도넛은 퍽퍽했고 달았다. 나는 도넛을 먹고 싶은게 아니었다. 아빠의 사랑을 갈구하느라 참았던 서러움이 터진것이었고, 그 울음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도넛을 먹고 싶다고 둘러댔던 것이다. 크고 따듯한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그제서야 마음이 가라앉았다. 단편적인 기억의 진실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를 결론적 의구심으로 말하자면, 사랑을 주고 받는 행위 과정의 감정적 불일치를 자각했기 때문이다. 문득 아들에게 사랑의 표현을 쏫으며 나는 동시에 나와 아빠의 관계를 회상하게 되었다. 연년차였던 바로위 작은 누나는 어릴적 건강이 안 좋았기 때문에 아빠는 유독 작은누나를 이뻐했다, 작은누나를 안아주는 만큼 나는 곁에서 부러움과 기다림의 기대심에  사로잡혔다. 아마도 그러한 것들이 쌓여서 어린 …

수덕사

나의 첫 수덕사 방문은 911 테러의 기억과 함께 한다. 대학생때 다른 과의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사진 촬영 요청을 받았었다. 수덕사에서 오랜 문서를 촬영해 달라고. 나는 약속의 안전을 위해 하루 전날 천안에 자취하는 친구집에서 하룻밤 자고 수덕사로 가기로 했다. 친구 집에 도착해 씻고나서 TV 채널을 돌려보다가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너무나 충격적인 영상은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영화보다 더한 참혹한 현실에 그날 밤 눈이 쉽게 감겨지지 않았다. 뒤숭숭한 기분으로 잠을 잤지만 다음날 아침은 의외로 상쾌했다. 수덕사로 가는 길은 너무나 고요했다. 가을 문턱의 공기가 닭살을 돋구웠다. 평일의 수덕사는 너무나 평온했다. 처음 와 봤지만 단숨에 마음에 드는 장소라 느꼈다. 지금은 그곳이 정확히 어딘지 모르겠다. 교수님 일행을 만나 쫒아 들어간 곳은 비밀의 집처럼 대나무가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한옥집이었다. 작은 마당과 집 한채는 큰 절의 부속건물이라기 보단 독립적인 밀실같은 곳 이었다. 깊은 산속이 아니었는데도 세상과는 유리된 고요한 적막감이 한층 배가되었다. 단번에 번뇌가 사라지고 평화로운 마음이 깃들었다. 그곳은 아마도 비구니 스님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노스님을 접견하고 마침 점심 공양때라 밥상이 들어왔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의 식사라 다소 긴장했지만 밥이 너무 맛있어서 침묵속에서도 너무 맛있어요를 연발했다. 밥도 밥이지만 너무 아름다운 한옥집 이었다. 대나무벽 사이로 햇빛이 격자무늬로 쏫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