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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워커 그린 라벨 15년

기대했던대로 이거 물건이다. 네 곳의 개성이 다른 증류소의 원액을 마스터 블렌더가 환상적인 밸런스로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를 만들어냈다. 키 몰트의 최저 숙성년도가 15년 인데도 6만원 초반의 가격이라면 상당히 괜찮다. 대형 마트에서 5만원 후반대에 샀었는데 가성비로는 저렴한 싱글 몰트 위스키 보다 더 나아 보인다. 요즘 마시고 있는 라프로익 이나 라가불린 처럼 확실한 개성이 있다기 보단 블렌디드의 장점이 아주 잘 녹아있다. 스페이사이드의 장점과 아일라의 접목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산뜻한 맛의 뒤엔 약간의 스모키 함이 뒤따른다. 스모키 함의 깔끔함이 블랙 라벨과는 한참 차이난다. 그러나 조금 아쉬운건 바디감은 가볍다. 전반적으로 라이트 하지만 밸런스가 뛰어나다. 가격이나 맛이나 너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좋은 위스키의 성질은 다 갖춘듯 하다. 사각 모양의 병 디자인과 그린 색의 조화도 아름답다. 코르그 마개가 맑은 뻥 소리가 아니라 좀 헐거운듯 하여 아쉽지만 그린 라벨은 여러병 쟁겨두고 싶은 위스키다.

코블러 바. Cobber Bar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 가보고 싶은 바를 드디어 가 보았다. 영화 ‘소공녀’에 나왔던 위스키 바. 겨울이 한창일 때 춥고 배고픈 상태로 이 바에 당도했다. 한옥의 천장이 멋스러웠다. 메뉴가 따로 없었다. 약간의 고심끝에 하이랜드 파크 18년을 주문해 보았지만 없어서 무난한 맥캘란 12년을 시켰다. 기본 견과류와 딸기 푸딩 케이크, 물 한잔과 함께 내앞에 위스키 한 잔이 셋팅 되었다. 맥켈란은 역시나 부드럽고 맛있었다. 위스키 입문자에게 권해도 무리 없을 정도다. 왠지 바에서 마셔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면이 있을 것 같다. 음악과 적당히 어두운 조명. 전문적인 바텐더의 배경 벽에 도열된 병들의 아우라가 술의 풍미를 더 자극하는 듯 하다. 위스키 주문의 서비스로 구운 소고기 세 점이 나왔다. 허기가 가셨고 눈이 밝아졌다. 작은 공간인지라 손님이 대기하면서 들어왔다. 내가 총각이라면 종종 가겠지만 한 번 가본거로 만족. 현실은 피곤에 쩔어 집에서 술 마시기도 귀찮다. 눈오는 겨울밤과 잘 어울리는 그런 바 였다.

라프로익 10

처음 라프로익을 알았을땐 모든게 비호감 이었다. 병의 색과 너무 하얀 라벨. 개구리를 연상시키는 이상한 이름. 한술더떠 항간의 시음평은 대부분 소독약향. 요오드향이 강해 도저히 마실수가 없다는 반응들 이었다. 또다른 반응들은 찬양 일색이었지만 왠지 옆 증류소인 라가불린의 고풍스런 이미지와는 천양지차와도 같았다. 그러나 부정과 편견은 강한 호기심을 낳는법, 과연 어떻길래. 위스키는 원래 소독약이었다. 아마도 이런 면을 잘 계승한 이미지가 라프로익이 아닐까. 현재에 이르러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는 고급 향취의 대명사이지만, 태생 자체는 소독과 마취제의 일종으로 민간에서 통용되던 것이었다. 세계대전 중에 술의 제조에는 곡물이 많이 쓰여 제한했지만 일부 위스키 제작자들은 의료용 알코올의 일종으로 위스키를 생산했다. 라프로익의 이미지는 그런 연유가.. 코를 찌르는 향이 나지만 신기하게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입안에 머금으면 온화한 향이 감돈다. 겉과 속이 다른 질감을 액체에서 느낄 수 있다니.. 물론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겠는건 예상된다. 스모키향(소독약)향이 실내에 잔잔히 쌓인다. 아일레이 섬의 위스키와 생굴이 어울린다지만 김치찌개와의 조합은 상상 이상이었다. 뒤끝에 남는 스모키 여운이 짜고달고매운 김치찌개속의 돼지고기와 만나면 이게 바로 행복한 위로의 조화로구나를 알게 된다. 과연 생명의 물이 맞구나를 깨닫게 된다.    

하이랜드 파크 12

새로운 위스키를 알아나가는 재미는 이제는 먼 과거가 돼버린 음반 구매의 행복한 과정과 닮아 있다. 눈과 귀에서 눈과 코 입으로 바뀌었을 뿐, 상상하고 셀레이고 고대하며 집에 돌아와 패킹을 뜯는다. 라벨을 읽고 색을 보며 고유한 향을 상상한다. CD안의 북클릿을 보며 헤드폰에서 첫 곡이 흐른다. 처음 접하는 생경함은 온 감각에 자극을 준다. 위스키는 록음악과 닮았다. 많이 마시지 않아도 머리를 휘감는 짜릿한 자극이 좋다. 점점 나의 위스키 취향을 알아가고 있다. 나는 풍미가 진한 위스키를 좋아한다. 아직 아일레이 위스키를 접해보지 않았지만,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하이랜드 파크 12와. 탈리스커 10에 꼿혀 버렸다. 둘 다 가성비 좋고 확실한 개성에 밸런스 까지 갖췄다. 스코틀랜드 최북단 오크니 섬에 있는 하이랜드 파크 증류소는 왠지 더 깨끗할 것 같다. 스모키향이 아주 강하진 않지만 묵직한 존재감이 잘 살아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절묘한 조화다. 묵직한듯 산뜻한듯. 혀의 자극이 오락가락 하는 밀당의 고수다. 수려하지 않으나 정체성이 확실하다. 다품고 있는 현모양처 같은 중도. 19살 노량진 대로에서 나의 지포라이터 기름 냄새가 좋다던 그녀도 분명 이 위스키를 좋아할 거야 란 밑도 끝도 없는 생각에 당혹스럽다가도 위스키가 과거를 회상하기에 참 좋은 방아쇠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스모키 향이 가진 마법이 아닐까. 근원의 향수를 …

발렌타인 21

사진 제일 오른쪽의 발렌타인 21년을 마실때, 글렌피딕 18과 자주 비교 시음을 했었다. 개인적으론 블렌디드 보단 싱글 몰트를 선호한다. 발렌타인 21은 대표적인 블렌디드 위스키 답게 아주 부드럽고 온화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유를 알겠다. 점점 나의 위스키 취향을 알아가고 있는데 확실히 발렌타인은 내 취향은 아니다.  이렇게 평범하고 준수한 맛은 독한 위스키를 즐기는 자에겐 마치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이 진로 소주마시다 타임머신 타고 2018년에 참이슬을 마신 후 이게 뭥미? 하는 기분과 흡사할 거다. 숙성년도가 높은 만큼 가격도 비싼데 뚜껑은 코르크 마개가 아니다. 병 디자인과 색상도 별로다. (아내는 왜 말도 없이 면세점에서 이것을 사왔담. 차라리 조니 워커 블랙 라벨 3병을 살 수 있는데) 내색을 안 했지만 입이 근질거려 혼났다. 그렇다고 발렌타인 12년과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훨씬 부드럽고 고급지다. 그래도 21년 숙성이란게 믿어지질 않는다. 돈 많은 위스키 입문자를 위한 괜찮은 선택.

더 글렌리벳 12년

푸른 초목의 싱그러운 5월의 아침이 내 혀에 내려 앉았다. 가볍고 산뜻한 향이 기분좋게 휘감는다. 청량감 있는 화이트 와인을 마신 느낌이다. 두툼한 스테이크를 썰며 마시는 식전주로도 훌륭할 듯 싶다. 우리나라에선 글렌피딕에 밀려 선호도가 떨어지는듯 하나 미국에선 싱글 몰트 위스키 판매 1위라 한다. 역사적으로도 최초로 합법화된 증류소고 글렌피딕 맥켈란과 함께, 3대 싱글 몰트 위스키 브랜다. 이것을 사기 위해 처음으로 그 유명한 남대문 시장 주류상가에 가 보았다. 한껏 기대를 품고 도착했지만 문을 닫았거나 정리하는 분위기 였다. 재빨리 흥정하고 6만원에 가져왔다. 청명한 달의 밝은면을 핥는듯한 자극이 입안에 가득이다. 여운이 길진 않지만 화사한 폭죽이 터지듯 생기가 넘친다. 20대 초반의 여대생 같은 풋풋함이 서려있다. 데일리 위스키로 손색이 없다.

글렌피딕 18

가장 유명한 스카치 싱글 몰트 위스키 글렌피딕은 그 유명세 만큼이나 훌륭했다. 역시나 세간의 평가가 틀리진 않는다. 복잡한 맛이 위스키의 매력이다. 복잡하다는 것은 딱히 이건 초코렛 향이다 라고 단언 할 수 없는 다채로운 맛과 향이 농축되 있어 오묘한 느낌을 받는다. 역시나 첫 느낌은 은은한 초코렛 향이다. 수줍게 발렌타인 데이에 교회 오빠에게 초코렛을 건네는 소녀의 손에 배인 초코렛 향 처럼 사랑스럽다. 새벽녘 동이 트는 스코틀랜드 계곡의 오두막에 아침을 짓는 나무를 태우는 훈연 향이 뒤 따른다. 게일어로 글렌은 계곡을 뜻하고 피딕은 사슴 이란 말 이란다. 깊은 계곡, 사슴, 청정한 숲의 물이 떠오른다. 입안을 적시는 액체의 질감이 부드럽다. 꿀과 사과향의 달달함이 지배하더니 혀 끝을 알싸하니 매운 느낌으로 변한다. 목을 넘기면서부터는 뒤끝에서 올라오는 휘발성 알코올의 여운이 식도를 타고 올라온다. 알콜 도수 40도 여서 스트레이트로 즐기기에 그리 부담되지 않는다. 45도 도수의 위스키는 훨씬 강렬한 느낌이다. 첫 모금이 입안의 침으로 코팅되어 부드러운 여운을 안겨주지만 두 번째 모금 부터는 좀 더 직접적으로 위스키의 강인함이 전해진다. 피트감으로 불리는 이탄 태운 향이 본격적으로 두드러진다. 간혹 저녁 무렵의 지방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 농가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냄새가 아득한 유년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밥을 짓는 엄마가 곧 …

위스키

위스키를 마셔온지는 꽤 됐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식도를 핥고 지나가는 짜릿함을 종종 즐겼다. 처음 위스키에 입을 댄 것은 대학때 였다. 그 때 나는 용기가 필요했다.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걔는 누구를 좋아함에 경계가 없었다. 어제 나랑 데이트를 하고 오늘 어떤 남자 등뒤에 매달려 오빠 달려!를 외치며 쐐~앵 오토바이가 지나가더라고 후배가 와서 알려주었다.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우리는 종로에서 데이트를 하며 ‘오 수정’도 같이 보았다. 손 한번 못 잡아봤지만 그 영화를 보았다는게 무척 대견스러웠다. 장롱위에 나열되 있던 양주 박스에 손이 간 건 그 즈음 이었다. 시바스 리갈 12년. 나는 형들이 추억삼아 얘기 하는 캡틴큐나. 나폴레옹의 사악함은 겪어보진 못했다. 어떤 형은 학교 과학실의 알콜램프의 알콜에다 보리차 섞은 맛이라 했고, 누군가는 그냥 신나(시너)를 마시는 거라 했다. 나는 캡틴큐를 마셔야 했다. 속에서 쓸어버려야 했다. 시바스 리갈 12년은 식도가 얼얼했지만 사악하진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취기가 올랐고 용기가 생겼다. 전화를 걸었고 취중고백을 해버렸다. 그렇게 위스키는 인생의 달고 짜고 쓴 순간순간에 동거동락하는 사이가 되고 있었다. 왜 20대 때는 끝도 없는 상실감에 시달렸는지 모르겠다. 나의 모든 용기는 끝,에 맞춰져 있었다. 첫 위스키의 맛은 기억나진 않지만 뜨겁고 싸한 물이 목구멍의 감각을 마비시키며 휘발됐다. 위스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