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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모어 12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이란 책은 아주 작고 얇다. 책의 원제는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이란다. 그의 여행법은 테마가 있는 여행이다. 당연히 스코틀랜드에 왔으면 위스키. 그가 골프를 친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보모어 증류소의 숙소에 여장을 풀고 아일레이 섬의 싱글 몰트 위스키와 함께 굴을 먹는 즐거움을 예찬한다. 크게 스카치 위스키의 생산지는 네구역으로 나뉜다. 하이랜드. 로우랜드. 스페이사이드(절반이 넘는 증류소가 여기에). 그리고 아일레이 섬. 이 아일라 섬이라 불리는 곳의 위스키는 스모키향과 갯내음이 과하다는게 특징이다. 그래서 호불호가 명확한, 어떤이에게는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쓰레기 이고 또 어떤이는 코를 킁킁대며 환장한다. 본격적인 아일라 싱글 몰트 위스키의 관문은 보모어 12년으로 정했다. 나또한 유리잔에 코를 박고 하염없이 킁킁대는 족속이다. 병의 코르그 마개를 여는 순간부터 보통의 블렌디드 위스키와는 다르다. 처음 향과 뒷 여운의 스모키 향이 길지만 입 안에서의 맛은 달콤하고 부드럽다. 바다의 풍파에 시달린 거친 수염을 가진 선원이 연상되나 그 속 마음은 한없이 여리다. 일출 일몰의 스산한 경이로움을 간직한 듯 신비롭다. 올 겨울엔 굴과 함께 아일레이 위스키로 행복을 달려야겠다.   

하이랜드 파크 12

새로운 위스키를 알아나가는 재미는 이제는 먼 과거가 돼버린 음반 구매의 행복한 과정과 닮아 있다. 눈과 귀에서 눈과 코 입으로 바뀌었을 뿐, 상상하고 셀레이고 고대하며 집에 돌아와 패킹을 뜯는다. 라벨을 읽고 색을 보며 고유한 향을 상상한다. CD안의 북클릿을 보며 헤드폰에서 첫 곡이 흐른다. 처음 접하는 생경함은 온 감각에 자극을 준다. 위스키는 록음악과 닮았다. 많이 마시지 않아도 머리를 휘감는 짜릿한 자극이 좋다. 점점 나의 위스키 취향을 알아가고 있다. 나는 풍미가 진한 위스키를 좋아한다. 아직 아일레이 위스키를 접해보지 않았지만,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하이랜드 파크 12와. 탈리스커 10에 꼿혀 버렸다. 둘 다 가성비 좋고 확실한 개성에 밸런스 까지 갖췄다. 스코틀랜드 최북단 오크니 섬에 있는 하이랜드 파크 증류소는 왠지 더 깨끗할 것 같다. 스모키향이 아주 강하진 않지만 묵직한 존재감이 잘 살아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절묘한 조화다. 묵직한듯 산뜻한듯. 혀의 자극이 오락가락 하는 밀당의 고수다. 수려하지 않으나 정체성이 확실하다. 다품고 있는 현모양처 같은 중도. 19살 노량진 대로에서 나의 지포라이터 기름 냄새가 좋다던 그녀도 분명 이 위스키를 좋아할 거야 란 밑도 끝도 없는 생각에 당혹스럽다가도 위스키가 과거를 회상하기에 참 좋은 방아쇠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스모키 향이 가진 마법이 아닐까. 근원의 향수를 …

글렌피딕 18

가장 유명한 스카치 싱글 몰트 위스키 글렌피딕은 그 유명세 만큼이나 훌륭했다. 역시나 세간의 평가가 틀리진 않는다. 복잡한 맛이 위스키의 매력이다. 복잡하다는 것은 딱히 이건 초코렛 향이다 라고 단언 할 수 없는 다채로운 맛과 향이 농축되 있어 오묘한 느낌을 받는다. 역시나 첫 느낌은 은은한 초코렛 향이다. 수줍게 발렌타인 데이에 교회 오빠에게 초코렛을 건네는 소녀의 손에 배인 초코렛 향 처럼 사랑스럽다. 새벽녘 동이 트는 스코틀랜드 계곡의 오두막에 아침을 짓는 나무를 태우는 훈연 향이 뒤 따른다. 게일어로 글렌은 계곡을 뜻하고 피딕은 사슴 이란 말 이란다. 깊은 계곡, 사슴, 청정한 숲의 물이 떠오른다. 입안을 적시는 액체의 질감이 부드럽다. 꿀과 사과향의 달달함이 지배하더니 혀 끝을 알싸하니 매운 느낌으로 변한다. 목을 넘기면서부터는 뒤끝에서 올라오는 휘발성 알코올의 여운이 식도를 타고 올라온다. 알콜 도수 40도 여서 스트레이트로 즐기기에 그리 부담되지 않는다. 45도 도수의 위스키는 훨씬 강렬한 느낌이다. 첫 모금이 입안의 침으로 코팅되어 부드러운 여운을 안겨주지만 두 번째 모금 부터는 좀 더 직접적으로 위스키의 강인함이 전해진다. 피트감으로 불리는 이탄 태운 향이 본격적으로 두드러진다. 간혹 저녁 무렵의 지방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 농가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냄새가 아득한 유년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밥을 짓는 엄마가 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