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를 보러 갔다가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단번에 느낌이 왔다. 무척 괜찮은 영화일꺼란 확신이 단 한장의 포스터 사진으로 전해졌다면 최고의 영화 포스터 아닌가. 요즘은 영화를 챙겨 보기도 힘들어 좋은 작품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다. 그저 삶의 우연에 맞닥드려 명작을 만나는 기쁨은 그만큼 크다.
제목도 포스터속의 두 인물들도 생소했다. 살쪄 둔해 보이는 거구의 남자는 내가 좋아라 하는 영화 ‘캡틴 판타스틱’의 아버지 였다. 비고 모텐슨. 여태 ‘반지의 제왕’을 안 봤는데 이 배우 때문에라도 이젠 챙겨 봐야 겠다는 결심이 섰다. (다만 아무래도 재개봉하는 극장에서 봐야겠지.)
포스터에서 짐작하듯이 로드무비이자 버디무비이며 인종차별이 살벌한 과거 미국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다. 나한텐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 이런 것이다. 가보지 않은 풍경, 가볼수 없는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체험, 거기다가 좋아하는 시대의 유행 음악을 접하는 즐거움까지 더하니 저절로 몰입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주제의 역사적 사실을 그렸던 영화들은 어쩌면 뻔한 클리쉐의 함정을 가지고 있다. ‘헬프’ 나 ‘히든 피겨스’가 그랬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선 이상한 재미와 매력이 있다. 인물 내면의 속마음이 보이는데 그것들의 솔직한 부딪힘들이 탁구공 주거니 받거니 하듯이 똑딱거리는 감정을 보여준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영화의 감독은 피터 패럴리. 패럴리 형제 영화의 그 패럴리 였다. 내 나이 19인가 20살에 보았던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짝사랑의 오랜 그늘에서 해방되어 모처럼 맘껏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득한 추억속의 영화를 만든 감독의 신작은 이렇게 또다시 나를 요동케 했다.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나를 설레게 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잔잔한 유머가 긴장을 해소시킨다. 유색인이 평범히 여행하기엔 너무나 살벌했던 시기, 두 달여 동안 미국 남부를 연주 여행 하기 위해서는 그린북이 필요했다. ”<그린북>은 1936년부터 1966년까지 발간된 연간 여행 안내 책자로, 흑인 여행자들이 여행 중 생길 수 있는 희롱, 체포 또는 물리적인 폭력을 피해 여행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했다. 미국 전역을 직접 운전하며 다닌 아프리카계 우편배달원 빅터 휴고 그린이 생존 도구가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문제의식”(씨네 21)에서 만든 안내책자다. 흑인이 아무리 성공하고 존경받아도 현실의 벽은 그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게 한다. 혼자 위스키를 마시며 달래보아도 그의 고뇌는 출구가 없다. 점점 극악한 현실을 체감할 뿐. 그와 동행한 말보다 주먹이 먼저인 이태리계의 거친 남자. 인종적 차이와 계급적 차이가 크로스오버 되어 서로의 편견이 무마되고 각자가 가진 장점으로 보듬는다. 뻔한 감상주의적 결말이 아니라 그 둘이 진심으로 포옹하는게 정말 이해가 정도로 그 과정을 범상치 않게 잘 보여줬다.
묵혀두었던 이 글을 마무리 하다 보니 지금 시점엔 결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탔다. 지금은 예전처럼 DVD를 사고 그러진 않지만 소장하고픈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