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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살루트 21

코르크 마개를 가진 경우라면 와인이든 위스키던 오래 보관할 술은 눕혀서 보관해야 한다. 장농 위 오랬동안 붙박혀 있던 로얄 살루트는 20년 정도의 먼지를 쌓아놓았다. 아마도 큰매형이 아버지 선물로 갔다놓은 귀한 술인데 나는 집에 갈때마다 수시로 장농위에 진열된 박스들을 노려보았다. 이미 시바스 리갈 12, 18 등은 수차례 해치웠다. 헤네시 꼬냑과 로얄 살루트가 남았는데 아버지는 그동안 내 눈빛을 읽었는지 흔쾌히 하사했다. 밑이 펑퍼짐한 네이비색의 사기병은 고전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름에서부터 병의 디자인과 라벨까지 ‘나는 고급이다’란 심볼을 확 드러낸다. 요즘껀 병을 감싸는 천 주머니도 있다. 위스키는 호박색의 아름다움이 있다. 맑은 호박색의 농도를 보며 이 스피릿들이 오크통에서 숙성된 오랜 시간을 가늠한다. 잔에 따러진것 보다 병안에 든 술의 색이 더 보기 좋다. 사기병이 더 잘 어울리는건 무색의 소주나 보드카가 더 어울린다. 사실상 박정희가 밤마다 대학생끼고 마신 술이 로얄 살루트 라 한다. 대중들에게는 막걸리만 쳐먹는다고 했던 놈이.. 현장 검증에선 비싼 로얄 살루트 대신 시바스 리갈로 대체되어 보도되었기 때문에 시바스 리갈이 흔히 박정희가 좋아한 술이라 알려졌다. 나는 너무나도 준수하고 흠잡을때 없는 위스키에 별 매력을 못 느끼겠다. 발렌타인 21과 함께 딱 대중들이 좋아할 맛이다. 거칠게 핡퀴는 독한 양주의 느낌이 사라졌다. 이게 좋을수도 있고 나쁠수도 …

조니 워커 그린 라벨 15년

기대했던대로 이거 물건이다. 네 곳의 개성이 다른 증류소의 원액을 마스터 블렌더가 환상적인 밸런스로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를 만들어냈다. 키 몰트의 최저 숙성년도가 15년 인데도 6만원 초반의 가격이라면 상당히 괜찮다. 대형 마트에서 5만원 후반대에 샀었는데 가성비로는 저렴한 싱글 몰트 위스키 보다 더 나아 보인다. 요즘 마시고 있는 라프로익 이나 라가불린 처럼 확실한 개성이 있다기 보단 블렌디드의 장점이 아주 잘 녹아있다. 스페이사이드의 장점과 아일라의 접목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산뜻한 맛의 뒤엔 약간의 스모키 함이 뒤따른다. 스모키 함의 깔끔함이 블랙 라벨과는 한참 차이난다. 그러나 조금 아쉬운건 바디감은 가볍다. 전반적으로 라이트 하지만 밸런스가 뛰어나다. 가격이나 맛이나 너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좋은 위스키의 성질은 다 갖춘듯 하다. 사각 모양의 병 디자인과 그린 색의 조화도 아름답다. 코르그 마개가 맑은 뻥 소리가 아니라 좀 헐거운듯 하여 아쉽지만 그린 라벨은 여러병 쟁겨두고 싶은 위스키다.

코블러 바. Cobber Bar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 가보고 싶은 바를 드디어 가 보았다. 영화 ‘소공녀’에 나왔던 위스키 바. 겨울이 한창일 때 춥고 배고픈 상태로 이 바에 당도했다. 한옥의 천장이 멋스러웠다. 메뉴가 따로 없었다. 약간의 고심끝에 하이랜드 파크 18년을 주문해 보았지만 없어서 무난한 맥캘란 12년을 시켰다. 기본 견과류와 딸기 푸딩 케이크, 물 한잔과 함께 내앞에 위스키 한 잔이 셋팅 되었다. 맥켈란은 역시나 부드럽고 맛있었다. 위스키 입문자에게 권해도 무리 없을 정도다. 왠지 바에서 마셔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면이 있을 것 같다. 음악과 적당히 어두운 조명. 전문적인 바텐더의 배경 벽에 도열된 병들의 아우라가 술의 풍미를 더 자극하는 듯 하다. 위스키 주문의 서비스로 구운 소고기 세 점이 나왔다. 허기가 가셨고 눈이 밝아졌다. 작은 공간인지라 손님이 대기하면서 들어왔다. 내가 총각이라면 종종 가겠지만 한 번 가본거로 만족. 현실은 피곤에 쩔어 집에서 술 마시기도 귀찮다. 눈오는 겨울밤과 잘 어울리는 그런 바 였다.

라가불린 16

병과 라벨의 디자인이 참 멋지다. 눈으로 즐기는 위스키의 첫인상은 라가불린이 제일 좋았다. 입에 착착 감기는 고급스런 어감도, 16년 숙성의 적당함도 좋다. 인기가 많아서 구하기가 쉽지 않고 가격도 비싼편인데 일본에서 그나마 싸게 구입했다. 라프로익 10의 3만원대의 가격만큼의 가성비 만족도가 높진 않지만 맛을 보니 균형잡힌 위스키의 품격이 어떤것인지 알 것도 같다. 스모키함이 극대화된 라프로익에서 밸런스를 살린, 조금은 순화된 피트감이다. 그래도 역시나 아일라 위스키다. 아내가 옆에서 병원냄새 난다고 했을 때, 순간 그날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고추가 버섯으로 변신하기 위한 고통에서 느꼈던 그 소독약 냄새가.. 생각났다. 컴컴하고 축축한 한기가 느껴지는 노오란 백열등 아래 흰? 침대. 내 의식은 그 옛날 독립투사가 731부대 생체 수술실에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구로동의 남성의원. 초등5학년, 인생 최대의 위기에서 뜬금없이 기이한 감각이 출몰했다. 간호사에 의한 너무나 부드럽고 촉촉한 피부의 자극, 엥 이 좋은 감촉은 뭐지 그런 찰나에 불빛에 비친 마취주사약의 방울방울들이 낙하하는 슬로우모션… 역시나 알콜의 매력은 기억을 환기시킨다. 고통스런 기억도 추억으로 포장한다. 처음으로 세상 구경나온 살갖의 설레임에 쓰라린 통증을 달래던 소독약 향이 지금은 왜이리 좋을까. 어쨌건 향수를 자극하는 라가불린 16년의 맛은 명성대로 우수했다. 사실 나는 아직 위스키의 다양한 맛을 느끼진 못한다. 애호가들이 위스키 품평을 할 …

라프로익 10

처음 라프로익을 알았을땐 모든게 비호감 이었다. 병의 색과 너무 하얀 라벨. 개구리를 연상시키는 이상한 이름. 한술더떠 항간의 시음평은 대부분 소독약향. 요오드향이 강해 도저히 마실수가 없다는 반응들 이었다. 또다른 반응들은 찬양 일색이었지만 왠지 옆 증류소인 라가불린의 고풍스런 이미지와는 천양지차와도 같았다. 그러나 부정과 편견은 강한 호기심을 낳는법, 과연 어떻길래. 위스키는 원래 소독약이었다. 아마도 이런 면을 잘 계승한 이미지가 라프로익이 아닐까. 현재에 이르러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는 고급 향취의 대명사이지만, 태생 자체는 소독과 마취제의 일종으로 민간에서 통용되던 것이었다. 세계대전 중에 술의 제조에는 곡물이 많이 쓰여 제한했지만 일부 위스키 제작자들은 의료용 알코올의 일종으로 위스키를 생산했다. 라프로익의 이미지는 그런 연유가.. 코를 찌르는 향이 나지만 신기하게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입안에 머금으면 온화한 향이 감돈다. 겉과 속이 다른 질감을 액체에서 느낄 수 있다니.. 물론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겠는건 예상된다. 스모키향(소독약)향이 실내에 잔잔히 쌓인다. 아일레이 섬의 위스키와 생굴이 어울린다지만 김치찌개와의 조합은 상상 이상이었다. 뒤끝에 남는 스모키 여운이 짜고달고매운 김치찌개속의 돼지고기와 만나면 이게 바로 행복한 위로의 조화로구나를 알게 된다. 과연 생명의 물이 맞구나를 깨닫게 된다.    

보모어 12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이란 책은 아주 작고 얇다. 책의 원제는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이란다. 그의 여행법은 테마가 있는 여행이다. 당연히 스코틀랜드에 왔으면 위스키. 그가 골프를 친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보모어 증류소의 숙소에 여장을 풀고 아일레이 섬의 싱글 몰트 위스키와 함께 굴을 먹는 즐거움을 예찬한다. 크게 스카치 위스키의 생산지는 네구역으로 나뉜다. 하이랜드. 로우랜드. 스페이사이드(절반이 넘는 증류소가 여기에). 그리고 아일레이 섬. 이 아일라 섬이라 불리는 곳의 위스키는 스모키향과 갯내음이 과하다는게 특징이다. 그래서 호불호가 명확한, 어떤이에게는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쓰레기 이고 또 어떤이는 코를 킁킁대며 환장한다. 본격적인 아일라 싱글 몰트 위스키의 관문은 보모어 12년으로 정했다. 나또한 유리잔에 코를 박고 하염없이 킁킁대는 족속이다. 병의 코르그 마개를 여는 순간부터 보통의 블렌디드 위스키와는 다르다. 처음 향과 뒷 여운의 스모키 향이 길지만 입 안에서의 맛은 달콤하고 부드럽다. 바다의 풍파에 시달린 거친 수염을 가진 선원이 연상되나 그 속 마음은 한없이 여리다. 일출 일몰의 스산한 경이로움을 간직한 듯 신비롭다. 올 겨울엔 굴과 함께 아일레이 위스키로 행복을 달려야겠다.   

탈리스커 10

요즘 하이랜드 파크 12와 같이 마시고 있는 탈리스커 10은 지금껏 마셔본 스카치 위스키 중에서는 스모키 향이 가장 쎄다. 스모키 향(피트감)의 대명사 아일레이(현지인 발음은 아일라) 섬 의 증류소 제품은 아직 접해보진 않았지만, 나는 이미 스모키에 빠져버렸다. 탈리스커 10은 하이랜드 파크 12와 마찬가지로 아주 조화로운 맛과 향을 뽐낸다. 이 스모키 향은 보리를 발아시켜 몰트(맥아)를 만들고 그것의 진행을 멈추기 위해 열기를 씌어주는데 이때 태우는 연료가 이탄(peat)이란 스코틀랜드 특유의, 땅에 이끼나 풀들이 썩어 켜켜히 축적된 토양을 말려 태운다. 전쟁과 가난으로 석탄이 없기 때문에 대체 연료로 사용되었으나 이 이탄에 배인 바닷내음, 풀향, 등등이 몰트에 씌여주면서 스카치 위스키 만의 스모키향이 만들어진다. 흙내음, 풀내음, 갯내음, 등이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스모키향은 코로 맞는 것도 좋지만 마시고 난 뒤 여운이 길게 올라오는 것이 일품이다. 인생의 씁슬함을 달래줄 대리자의 역활이다. 담배와 로큰롤은 스카치 싱글 몰트 위스키 한잔으로 대체되었다. 하루의 피로와 회한은 탈리스커 10년 한잔으로 날려버린다. 바닷바람이 느껴진다. 이 스카이섬은 최근에 방송된 탐험예능프로에 나왔다. ‘거기가 어딘데?. 비오고 바람불고 축축한 초지를 걷는 장면에서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인간이 이런 위스키를 증류하고 10년간 바닷 바람을 머금으며 숙성된 위스키의 고향이 그려졌다.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이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괜찮다. 주세가 …

하이랜드 파크 12

새로운 위스키를 알아나가는 재미는 이제는 먼 과거가 돼버린 음반 구매의 행복한 과정과 닮아 있다. 눈과 귀에서 눈과 코 입으로 바뀌었을 뿐, 상상하고 셀레이고 고대하며 집에 돌아와 패킹을 뜯는다. 라벨을 읽고 색을 보며 고유한 향을 상상한다. CD안의 북클릿을 보며 헤드폰에서 첫 곡이 흐른다. 처음 접하는 생경함은 온 감각에 자극을 준다. 위스키는 록음악과 닮았다. 많이 마시지 않아도 머리를 휘감는 짜릿한 자극이 좋다. 점점 나의 위스키 취향을 알아가고 있다. 나는 풍미가 진한 위스키를 좋아한다. 아직 아일레이 위스키를 접해보지 않았지만,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하이랜드 파크 12와. 탈리스커 10에 꼿혀 버렸다. 둘 다 가성비 좋고 확실한 개성에 밸런스 까지 갖췄다. 스코틀랜드 최북단 오크니 섬에 있는 하이랜드 파크 증류소는 왠지 더 깨끗할 것 같다. 스모키향이 아주 강하진 않지만 묵직한 존재감이 잘 살아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절묘한 조화다. 묵직한듯 산뜻한듯. 혀의 자극이 오락가락 하는 밀당의 고수다. 수려하지 않으나 정체성이 확실하다. 다품고 있는 현모양처 같은 중도. 19살 노량진 대로에서 나의 지포라이터 기름 냄새가 좋다던 그녀도 분명 이 위스키를 좋아할 거야 란 밑도 끝도 없는 생각에 당혹스럽다가도 위스키가 과거를 회상하기에 참 좋은 방아쇠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스모키 향이 가진 마법이 아닐까. 근원의 향수를 …

발렌타인 21

사진 제일 오른쪽의 발렌타인 21년을 마실때, 글렌피딕 18과 자주 비교 시음을 했었다. 개인적으론 블렌디드 보단 싱글 몰트를 선호한다. 발렌타인 21은 대표적인 블렌디드 위스키 답게 아주 부드럽고 온화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유를 알겠다. 점점 나의 위스키 취향을 알아가고 있는데 확실히 발렌타인은 내 취향은 아니다.  이렇게 평범하고 준수한 맛은 독한 위스키를 즐기는 자에겐 마치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이 진로 소주마시다 타임머신 타고 2018년에 참이슬을 마신 후 이게 뭥미? 하는 기분과 흡사할 거다. 숙성년도가 높은 만큼 가격도 비싼데 뚜껑은 코르크 마개가 아니다. 병 디자인과 색상도 별로다. (아내는 왜 말도 없이 면세점에서 이것을 사왔담. 차라리 조니 워커 블랙 라벨 3병을 살 수 있는데) 내색을 안 했지만 입이 근질거려 혼났다. 그렇다고 발렌타인 12년과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훨씬 부드럽고 고급지다. 그래도 21년 숙성이란게 믿어지질 않는다. 돈 많은 위스키 입문자를 위한 괜찮은 선택.

더 글렌리벳 12년

푸른 초목의 싱그러운 5월의 아침이 내 혀에 내려 앉았다. 가볍고 산뜻한 향이 기분좋게 휘감는다. 청량감 있는 화이트 와인을 마신 느낌이다. 두툼한 스테이크를 썰며 마시는 식전주로도 훌륭할 듯 싶다. 우리나라에선 글렌피딕에 밀려 선호도가 떨어지는듯 하나 미국에선 싱글 몰트 위스키 판매 1위라 한다. 역사적으로도 최초로 합법화된 증류소고 글렌피딕 맥켈란과 함께, 3대 싱글 몰트 위스키 브랜다. 이것을 사기 위해 처음으로 그 유명한 남대문 시장 주류상가에 가 보았다. 한껏 기대를 품고 도착했지만 문을 닫았거나 정리하는 분위기 였다. 재빨리 흥정하고 6만원에 가져왔다. 청명한 달의 밝은면을 핥는듯한 자극이 입안에 가득이다. 여운이 길진 않지만 화사한 폭죽이 터지듯 생기가 넘친다. 20대 초반의 여대생 같은 풋풋함이 서려있다. 데일리 위스키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