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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t music

미스 아메리카나

불혹의 나이라 불리는 마흔살이 넘어가면서 느끼는건 설레임, 열정같은 마음의 떨림이 많이 둔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런것의 대표 적인게 음악 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고 수집하고 한동안 그 음악에 푹 빠져지내는 일이 사라졌다. 음악이 사라진 삶은 단조로워졌고 침잠되어졌다. 젊은시절 한때의 음악만을 계속 듣는 다면 그것이 꼰대가 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보니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잭 화이트 이후로 새로 열정을 쏟은 뮤지션이 없었다. 얼마전 U2의 내한공연을 관람하면서도 느꼈던 바이다. 그렇게 염원했던 밴드의 공연을 보면서도 좀처럼 흥이 나질 않았다. 뭔가 순도높게 빠질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진것 같다. 그런 와중에 내게 테일러 스위프트의 발견은 다시금 삶의 희열을 가져왔다. 워낙 유명했기에 이름만 들어봤던 상태에서 NPR Tiny Desk 쇼케이스에서의 첫 인상은 모든면이 건강한 사람 같다는 인상이었다. 중음이 매력적인 그녀의 음색은 개인적으로는 아델의 음색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주얼과 마찬가지로 곡을 시작하기전 그 곡에 대한 사연, 만들어진 계기등을 유려한 언변으로 이야기 해준다. 싱어 송라이터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텔러의 능력이다. 그렇게 그녀의 노래들, 발매했던 앨범들을 파악할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노래 리스트도 만들 수 있었다. I knew you were trouble. Blank Space. We are never ever getting back together. 22. Red. Me. Shake it off. Lover. The …

Jewel

어제 TV채널을 돌리다 보니 이제 잘 안보는 JTBC 뉴스룸에서 재즈 싱어 나윤선의 인터뷰를 하더라. 잘 모르는데 유럽쪽에선 인지도가 상당해 보인다. 인터뷰에 이어 라이브 공연을 한곡 했다. 내가 처음 팝송을 접하고 좋아했던 가수는 여자 팝가수였다. 80년대말 티파니, 데비 깁슨, 마티카의 노래를 들으며 귀와 감성이 틔였다고 할까. 그 후로 점차 밴드 음악, 록음악을 좋아하게 됐지만 근본에 깔린 감성의 취향은 여자 보컬의 그 무언가(아련함) 이다. 청소년기 당대의 디바는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온, 머라이어 캐리 등이었다. 마돈나, 신디 로퍼들은 바로 앞선 세대 였고, 시네드 오코너는 변방(아일랜드) 느낌이 강했다. 90년대에 들어서 독보적인 개성의 여자 보컬이 득세했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크랜배리스의 돌로레스 오리오던과 앨라니스 모리셋트, 포 넌 블론즈의 린다 페리, 노 다웃의 그웬 스테파니 등은 너무나 특출했다. 수잔 베가와 다이도의 단아한 음색이 좋기도 했지만 흑백 티비 화면속의 조안 바에즈의 청아한 포크송에 마음이 심쿵했다. 아무래도 춤추는 팝 가수 보다는 기타 치며 노래하는 싱어 송라이터에 끌렸다. 리사 로엡의 stay (I missed you) 도 무척 좋아했던 노래다. 사족이 길었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최고의 여성 싱어 송라이터는 쥬얼 이다. 대학생때 처음 쥬얼의 노래 Foolish game 을 듣고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녀는 1974년생. 요즘의 아델이나 테일러 스위프트 보다 …

지미 헨드릭스

언제부턴가, 아마도 서른 중반을 넘어서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져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이듦에 있어서 어떤 특정 나이때(시기)를 지나면 더이상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고 하던데, 요즘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는 맞는말 같다. 열정적으로 음악을 들었던 시기를 향유하며 청춘이 소멸되는 과정을 하염없이 음미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것이 아주 단적인 예 일테지만 우리가 기성세대로 편입하는 과정일 것이고, 개인의 보수화는 그렇게 진행되는 것일게다. 나의 청춘의 음악이었던 록음악이 지금은 과거의 화려한 명성을 뒤로한채 공룡화석처럼 박물관에 유리되었다.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밴드의 형식뿐만 아니라 음악의 사운드와 메시지가 가지는 태도면에서 록은 죽은지 오래다. 젊음의 자유분방함을 대변하고 사회 진보의 기치를 저항의 몸짓으로 발버둥 치던 록의 시절에는 그 헛발질이 무의미하지 않았다.  체제의 억압을 넘어 젊음의 절규는 사회를 진보로의 방향으로 트는 파급력이 있었다. 나는 그 클래식한 혼돈의 시대가 그립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이라 겪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68혁명과 지미 헨드릭스가 쩌렁쩌렁하게 기타를 물어뜯고 기타로 마스터베이션 하는듯 현란한 몸짓 속에서 그 시대를 음미한다. 록이 죽은 시대에 우리는 ‘쇼미더머니’를 통해 지극히 개인화되고 황금만능주의의 사회 밑바닥 정신을 랩으로 소비한다. 현시대에 젊은이들이 록을 한다는건 대단한 사치이거나. 부유한 자제들이 취미삼아 하는 것이다. 기타와 앰프, 그리고 드럼 셋트 등등등. 시간과 돈, 적당한 공간이 …

R.E.M. _ Automatic for the people (1992)

알이엠의 음반은 90년대의 수많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의 명반에 밀려 자주 듣지 못했다. 명반은 그 예술적 생명력을 잃지 않는 법인데, 미세 먼지가 휩쓴 어느 겨울날 주말, 무심코 먼지 털어 들어본 이 앨범은 감동이었다. 알이엠은 80년대 초부터 활동해온 노장 밴드로, 90년대 얼터너티브 밴드들에겐 대 선배 같은 존재다. 70년대 후반의 디스코 열풍과 MTV의 시작으로 대형 팝스타의 등장. 헤비메탈 밴드들의 득세 등, 80년대의 음악씬은 정치의 우익 보수화에 맞물려 뮤지션들도 재벌이상의 돈과 지위를 가졌다. 대형 스타디움 공연과 초대형 리무진, 마약과 섹스는 그러한 천한 자본주의의 성공의 상징이었다. 그런 화려한 뮤직 비즈니스 세계의 이면인 언더그라운드에서, 수많은 지방 대학 축제며 동네 파티며, 누군가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어 소박하게 포크,컨트리,록 풍의 음악을 연주한 밴드가 있었는데, 그들이 R.E.M. 이었다.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자기들의 음악을 하는 그들에겐 오랜 무명 생활은 당연지사. 그당시 뜰려고 음악을 했다면 강력한 꽃단장 헤비메탈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해가고  90년대 들어 일련의 신세대 음악군이 등장하면서, 알이엠은 새로운 음악군의 선구자적인 존재가 되었다. 세상이 뭔가에 홀려 있어도 묵묵히 자기들만의 토양을 일군 탓이다. R.E.M.이란 밴드명은 (Rapid Eye Movement)의 약자이다. 램 수면 상태(잠에서 깨어나기 전의 얕은 수면 상태에서의 빠른 안구 운동)를 말한다. 수능 시험 볼 때, 영어과목 문항 중에 R.E.M.을 설명하는 지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