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baesiwan

한지민홀릭

한동안 멜로드라마가 시시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다가 우연히 보게된 드라마 ‘봄밤’에 푹 빠져 버렸다. 사실은 드라마에 빠졌다기 보다 한지민의 아름다움에 홀렸다고 할까. 드라마의 내용적으로는 한지민(이정인)에게 버림받은 남자 권기석한테 감정이입이 더 많이 된다. 약간 속물같고 세속적인 인물이지만 극중에서 제일 비참한 상태에 놓여있다보니, 한지민의 달달한 사랑에 눈길이 확 가다가도 그 쓰린 마음에, 하~ 사랑은 이리도 참 잔인하구나 를 읊조린다.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한 남자의 민낯을 낮낮히 보게 되겠지만 왠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생각해보니 근래에 한지민의 출연작들을 틈틈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는 와이프”눈이 부시게’ 영화’미스백’ 훌쩍 전에는 ‘플랜맨’도 재밌게 보았었다. 티비로 보는 인간 자체에 이렇게 감동하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조니 워커 그린 라벨 15년

기대했던대로 이거 물건이다. 네 곳의 개성이 다른 증류소의 원액을 마스터 블렌더가 환상적인 밸런스로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를 만들어냈다. 키 몰트의 최저 숙성년도가 15년 인데도 6만원 초반의 가격이라면 상당히 괜찮다. 대형 마트에서 5만원 후반대에 샀었는데 가성비로는 저렴한 싱글 몰트 위스키 보다 더 나아 보인다. 요즘 마시고 있는 라프로익 이나 라가불린 처럼 확실한 개성이 있다기 보단 블렌디드의 장점이 아주 잘 녹아있다. 스페이사이드의 장점과 아일라의 접목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산뜻한 맛의 뒤엔 약간의 스모키 함이 뒤따른다. 스모키 함의 깔끔함이 블랙 라벨과는 한참 차이난다. 그러나 조금 아쉬운건 바디감은 가볍다. 전반적으로 라이트 하지만 밸런스가 뛰어나다. 가격이나 맛이나 너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좋은 위스키의 성질은 다 갖춘듯 하다. 사각 모양의 병 디자인과 그린 색의 조화도 아름답다. 코르그 마개가 맑은 뻥 소리가 아니라 좀 헐거운듯 하여 아쉽지만 그린 라벨은 여러병 쟁겨두고 싶은 위스키다.

새벽

간혹 12시에 잠이 들었음에도 새벽 세~네시에 깨곤 한다. 건강에 무언가 문제가 있나 의심이 들다가도 발밑에 널부러져 자고 있는 아들을 다시 제자리에 눕히고는 깊은 밤중의 적요를 즐긴다. 이어폰을 꼿고 유투브에 나의 음악의 신을 재생한다. 골방에 틀어박힌 십대로 돌아간것 같은 온전한 나만의 시간, 서서히 희미해져가는 감성에 홀연히 저항한다. 나는 시를 썻었고 수줍게 누군가에게 시를 쓴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특이한 아이네. 하는 그 눈빛은 호기심의 반응이었지만 스스로 시 나부랑이를 쓰는 괴짜로 웅크려들었다. 내 노오란 노트에는 커트 코베인의 허무와 자비스 코커의 위트가 뒤섞인 자아가 길을 잃고 출몰했다. 이제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자기연민에 빠진 그 시간들이 영광의 나날들인 것을, 새벽은 명확히 동틈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지만 나는 새벽에 머물렀었다. 내 영혼은 이제 아침이다.. 안개가 끼었든 비가 내리던 상관없다.

코블러 바. Cobber Bar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 가보고 싶은 바를 드디어 가 보았다. 영화 ‘소공녀’에 나왔던 위스키 바. 겨울이 한창일 때 춥고 배고픈 상태로 이 바에 당도했다. 한옥의 천장이 멋스러웠다. 메뉴가 따로 없었다. 약간의 고심끝에 하이랜드 파크 18년을 주문해 보았지만 없어서 무난한 맥캘란 12년을 시켰다. 기본 견과류와 딸기 푸딩 케이크, 물 한잔과 함께 내앞에 위스키 한 잔이 셋팅 되었다. 맥켈란은 역시나 부드럽고 맛있었다. 위스키 입문자에게 권해도 무리 없을 정도다. 왠지 바에서 마셔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면이 있을 것 같다. 음악과 적당히 어두운 조명. 전문적인 바텐더의 배경 벽에 도열된 병들의 아우라가 술의 풍미를 더 자극하는 듯 하다. 위스키 주문의 서비스로 구운 소고기 세 점이 나왔다. 허기가 가셨고 눈이 밝아졌다. 작은 공간인지라 손님이 대기하면서 들어왔다. 내가 총각이라면 종종 가겠지만 한 번 가본거로 만족. 현실은 피곤에 쩔어 집에서 술 마시기도 귀찮다. 눈오는 겨울밤과 잘 어울리는 그런 바 였다.

라가불린 16

병과 라벨의 디자인이 참 멋지다. 눈으로 즐기는 위스키의 첫인상은 라가불린이 제일 좋았다. 입에 착착 감기는 고급스런 어감도, 16년 숙성의 적당함도 좋다. 인기가 많아서 구하기가 쉽지 않고 가격도 비싼편인데 일본에서 그나마 싸게 구입했다. 라프로익 10의 3만원대의 가격만큼의 가성비 만족도가 높진 않지만 맛을 보니 균형잡힌 위스키의 품격이 어떤것인지 알 것도 같다. 스모키함이 극대화된 라프로익에서 밸런스를 살린, 조금은 순화된 피트감이다. 그래도 역시나 아일라 위스키다. 아내가 옆에서 병원냄새 난다고 했을 때, 순간 그날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고추가 버섯으로 변신하기 위한 고통에서 느꼈던 그 소독약 냄새가.. 생각났다. 컴컴하고 축축한 한기가 느껴지는 노오란 백열등 아래 흰? 침대. 내 의식은 그 옛날 독립투사가 731부대 생체 수술실에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구로동의 남성의원. 초등5학년, 인생 최대의 위기에서 뜬금없이 기이한 감각이 출몰했다. 간호사에 의한 너무나 부드럽고 촉촉한 피부의 자극, 엥 이 좋은 감촉은 뭐지 그런 찰나에 불빛에 비친 마취주사약의 방울방울들이 낙하하는 슬로우모션… 역시나 알콜의 매력은 기억을 환기시킨다. 고통스런 기억도 추억으로 포장한다. 처음으로 세상 구경나온 살갖의 설레임에 쓰라린 통증을 달래던 소독약 향이 지금은 왜이리 좋을까. 어쨌건 향수를 자극하는 라가불린 16년의 맛은 명성대로 우수했다. 사실 나는 아직 위스키의 다양한 맛을 느끼진 못한다. 애호가들이 위스키 품평을 할 …

그린북. 2019

영화 ‘말모이’를 보러 갔다가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단번에 느낌이 왔다. 무척 괜찮은 영화일꺼란 확신이 단 한장의 포스터 사진으로 전해졌다면 최고의 영화 포스터 아닌가. 요즘은 영화를 챙겨 보기도 힘들어 좋은 작품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다. 그저 삶의 우연에 맞닥드려 명작을 만나는 기쁨은 그만큼 크다. 제목도 포스터속의 두 인물들도 생소했다. 살쪄 둔해 보이는 거구의 남자는 내가 좋아라 하는 영화 ‘캡틴 판타스틱’의 아버지 였다. 비고 모텐슨. 여태 ‘반지의 제왕’을 안 봤는데 이 배우 때문에라도 이젠 챙겨 봐야 겠다는 결심이 섰다. (다만 아무래도 재개봉하는 극장에서 봐야겠지.) 포스터에서 짐작하듯이 로드무비이자 버디무비이며 인종차별이 살벌한 과거 미국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다. 나한텐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 이런 것이다. 가보지 않은 풍경, 가볼수 없는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체험, 거기다가 좋아하는 시대의 유행 음악을 접하는 즐거움까지 더하니 저절로 몰입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주제의 역사적 사실을 그렸던 영화들은 어쩌면 뻔한 클리쉐의 함정을 가지고 있다. ‘헬프’ 나 ‘히든 피겨스’가 그랬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선 이상한 재미와 매력이 있다. 인물 내면의 속마음이 보이는데 그것들의 솔직한 부딪힘들이 탁구공 주거니 받거니 하듯이 똑딱거리는 감정을 보여준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영화의 감독은 피터 …

라프로익 10

처음 라프로익을 알았을땐 모든게 비호감 이었다. 병의 색과 너무 하얀 라벨. 개구리를 연상시키는 이상한 이름. 한술더떠 항간의 시음평은 대부분 소독약향. 요오드향이 강해 도저히 마실수가 없다는 반응들 이었다. 또다른 반응들은 찬양 일색이었지만 왠지 옆 증류소인 라가불린의 고풍스런 이미지와는 천양지차와도 같았다. 그러나 부정과 편견은 강한 호기심을 낳는법, 과연 어떻길래. 위스키는 원래 소독약이었다. 아마도 이런 면을 잘 계승한 이미지가 라프로익이 아닐까. 현재에 이르러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는 고급 향취의 대명사이지만, 태생 자체는 소독과 마취제의 일종으로 민간에서 통용되던 것이었다. 세계대전 중에 술의 제조에는 곡물이 많이 쓰여 제한했지만 일부 위스키 제작자들은 의료용 알코올의 일종으로 위스키를 생산했다. 라프로익의 이미지는 그런 연유가.. 코를 찌르는 향이 나지만 신기하게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입안에 머금으면 온화한 향이 감돈다. 겉과 속이 다른 질감을 액체에서 느낄 수 있다니.. 물론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겠는건 예상된다. 스모키향(소독약)향이 실내에 잔잔히 쌓인다. 아일레이 섬의 위스키와 생굴이 어울린다지만 김치찌개와의 조합은 상상 이상이었다. 뒤끝에 남는 스모키 여운이 짜고달고매운 김치찌개속의 돼지고기와 만나면 이게 바로 행복한 위로의 조화로구나를 알게 된다. 과연 생명의 물이 맞구나를 깨닫게 된다.    

윈터스 본. 2010

이 영화는 바로 직전에 보았던 영화 ‘흔적없는 삶’ 감독의 작품이다. 감독의 연출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호평 받은 전작은 또 어떨까 싶어서 찾아서 보았다. 제니퍼 로렌스란 스타 탄생의 서막 같은 영화다. 제니퍼 로렌스에 의해, 제니퍼 로렌스를 위한 각별한 영화다. 미국 시골(미주리주 어느 동네)의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의 큰딸이 17살의 제니퍼 로렌스인데, 아빠가 범죄에 연루되 감옥에 갔다 집을 담보로 보석금을 내고 출소한 이후 사라졌다. 문제는 다가오는 재판에 출석을 안 하면 담보로 잡힌 집이 넘어간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엄마와 어린 두 동생을 돌보며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집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그녀는 백방으로 수소문 하지만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냉랭하다. 차디찬 겨울의 피폐한 풍경들, 가난에 쪼그라든 주름과, 배려나 동정에 궁색한 영혼없는 눈빛의 사람들. 21세기 최강국 미국의 민낮은 적나라 했다. 마치 1930년대 경제공황때 미국 농촌의 참혹한 현실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이나 워커 에반스 사진속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쓴것 같다. 아빠의 실종이란 데이빗 린치 감독의 전매특허인 기괴한 미스테리를 첨가해서 말이다. 아빠가 무얼 했길래 찾아가는 사람마다 저렇게 냉정할까. 이 마을의 미스테리는 마약제조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처음엔 아빠를 찾는게 목적이었지만 종국에는 아빠의 생사 확인이 더 중요해졌다. 그것도 확증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죽음이 …

흔적없는 삶. 2018

숨은 보석같은 영화였다. 내가 아빠가 되었기 때문에 잔잔한 울림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설명하지 않고 덤덤히 보여주기만 해도 그들의 삶의 선택에 동화되었다. 미국 오레건주 포틀랜드 외곽의 국유지 숲속에서 한 부녀가 산다. 왜, 언제부터, 숲속에서 노숙을 하는지 모르지만, 많은 대화가 없어도 아빠와 딸의 각별한 사이는 범죄에 연관되어 도피하는 삶 보다는, 어떤 트라우마로 인한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이 명확해 보인다. 아빠 역의 배우 벤 포스터는 참전용사 이미지가 강했는데 사회복지사의 질문에서 언듯 그랬던 과거를 유추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대화로 연기하는 그의 무표정에서 더 많은 마음의 굴곡을 느낄 수 있었다. 사회 제도를 벗어나 자연인이 되고자 하는 그의 의지 속에는 아픔이 녹아 있기 때문에 무어라 설명할 수 없어도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다만 10대 중반인 딸의 입장은 달랐다. 숲속에서의 삶이 무척 자연스럽고 익숙했지만, 우연한 실수로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사회에 편입되, 새로운 삶을 맞이한다. 딸은 사회복지사가 마련해준 정착된 환경을 마음에 들어한다. 친구를 사귀고 사람과의 관계망속으로 서서히 들어간다. 하지만 아빠는 주거의 대가로 노동을 하는 일련의 사회화에 심한 염증을 느낀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그의 고뇌는 사연모를 그의 사정과 함께 내적 고통을 야기 시킨다. 결국 다시 숲으로의 귀환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딸은 아쉬움을 뒤로한채 묵묵히 아빠의 길을 따라 나선다. …

보헤미안 랩소디, 2018

퀸의 팬들은 이 영화에 탐탁치 않은 시선과 박한 평가를 하는듯 하고 오히려 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영화의 매력에 빠져드는 듯 하다. 퀸의 팬들은 퀸이 프레디 머큐리다 란 생각보다는 멤버 각각의 역량과 밴드로서의 퀸을 절대적으로 옹호한다. 물론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프레디 머큐리의 존재는 절대적으로 대체불가다. 퀸의 전기영화이지만 그 중심엔 한창나이, 마흔다섯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죽게된 프레디 머큐리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1985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앞두고 카메라는 과거로 회기한다. 전형적인 전기영화의 코드를 차곡차곡 밟아 간다. 프레디 머큐리와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 드러머 로저 테일러와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부터 밴드가 성장하는 순간들을 우리는 유쾌하고 경이롭게 바라본다.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밴드 멤버들의 우정과 우여곡절 와중에 퀸의 명곡들은 아주 명징하게 흐른다. 록음악은 이렇게 들어야 제 맛이다. 모기 왱왱거리듯 작은 볼륨의 소음이 아닌 오감을 자극하는 출력은 감각을 황홀하게 한다. 일반 극장에서도 좋았는데 아이맥스나 사운드에 특화된 상영관에선 더 좋았을 듯 하다. 출연 배우들과 실존 멤버들과의 싱크로는 대단하다.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가 가장 안 닮았고.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놀라울 정도다. 알다시피 프레디 머큐리는 인도/파키스탄계 였고 앞니가 독특한 외모를 보형물로 표현했는데 개인적으론 눈에 계속 거슬렸다. 반면에 이 배우의 눈빛 연기가 압권이었다. 음악 외 적으로 감정적인 몰입을 유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