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baesiwan

1000일

살아오면서 너무 아름다워서, 행복해서, 저절로 눈물이 나는 경험은 흔치 않을 거다. 내가 느낀바로는 궁극의 행복은 무탈하게 자라나는, 해맑은 웃음으로 뛰어 노는 자식을 보는 일이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 인생의 가장 큰 선택은 아기를 가진 일이다. 가장 잘한 결정이기도 하다. 물론 천방지축의 아이를 보는 감정은 다각적이다. 기쁨과 불안 염려 즐거움과 피로가 혼재한 상황에서 다이아몬드 엣지에 반짝 빛을 발하는 순간에 내 영혼은 베인다. 너무 아름다워서 모든 고뇌가 상실된다. 이런 순간이 지속되면 그것이 천국일 것이다. 태어난지 천 일을 맞은 아들을 생각하며 감개무량한 기분에 휩싸인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들이 대견하다. 천 일 동안의 희노애락이 너무 식상한 표현이지만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주어 다행히도 노여움과 슬픔은 거의 없었다. 아이와 함께 부모도 같이 성장하는데 오히려 육체적 피로와 함께 마음의 평정을 유지못할때가 많았다. 자책하고 반성하며 스스로를 귀감삼아 나아간다. 모든게 처음이니까 힘듦과 시행착오는 겪을 수 밖에.

미스 아메리카나

불혹의 나이라 불리는 마흔살이 넘어가면서 느끼는건 설레임, 열정같은 마음의 떨림이 많이 둔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런것의 대표 적인게 음악 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고 수집하고 한동안 그 음악에 푹 빠져지내는 일이 사라졌다. 음악이 사라진 삶은 단조로워졌고 침잠되어졌다. 젊은시절 한때의 음악만을 계속 듣는 다면 그것이 꼰대가 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보니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잭 화이트 이후로 새로 열정을 쏟은 뮤지션이 없었다. 얼마전 U2의 내한공연을 관람하면서도 느꼈던 바이다. 그렇게 염원했던 밴드의 공연을 보면서도 좀처럼 흥이 나질 않았다. 뭔가 순도높게 빠질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진것 같다. 그런 와중에 내게 테일러 스위프트의 발견은 다시금 삶의 희열을 가져왔다. 워낙 유명했기에 이름만 들어봤던 상태에서 NPR Tiny Desk 쇼케이스에서의 첫 인상은 모든면이 건강한 사람 같다는 인상이었다. 중음이 매력적인 그녀의 음색은 개인적으로는 아델의 음색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주얼과 마찬가지로 곡을 시작하기전 그 곡에 대한 사연, 만들어진 계기등을 유려한 언변으로 이야기 해준다. 싱어 송라이터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텔러의 능력이다. 그렇게 그녀의 노래들, 발매했던 앨범들을 파악할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노래 리스트도 만들 수 있었다. I knew you were trouble. Blank Space. We are never ever getting back together. 22. Red. Me. Shake it off. Lover. The …

로얄 살루트 21

코르크 마개를 가진 경우라면 와인이든 위스키던 오래 보관할 술은 눕혀서 보관해야 한다. 장농 위 오랬동안 붙박혀 있던 로얄 살루트는 20년 정도의 먼지를 쌓아놓았다. 아마도 큰매형이 아버지 선물로 갔다놓은 귀한 술인데 나는 집에 갈때마다 수시로 장농위에 진열된 박스들을 노려보았다. 이미 시바스 리갈 12, 18 등은 수차례 해치웠다. 헤네시 꼬냑과 로얄 살루트가 남았는데 아버지는 그동안 내 눈빛을 읽었는지 흔쾌히 하사했다. 밑이 펑퍼짐한 네이비색의 사기병은 고전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름에서부터 병의 디자인과 라벨까지 ‘나는 고급이다’란 심볼을 확 드러낸다. 요즘껀 병을 감싸는 천 주머니도 있다. 위스키는 호박색의 아름다움이 있다. 맑은 호박색의 농도를 보며 이 스피릿들이 오크통에서 숙성된 오랜 시간을 가늠한다. 잔에 따러진것 보다 병안에 든 술의 색이 더 보기 좋다. 사기병이 더 잘 어울리는건 무색의 소주나 보드카가 더 어울린다. 사실상 박정희가 밤마다 대학생끼고 마신 술이 로얄 살루트 라 한다. 대중들에게는 막걸리만 쳐먹는다고 했던 놈이.. 현장 검증에선 비싼 로얄 살루트 대신 시바스 리갈로 대체되어 보도되었기 때문에 시바스 리갈이 흔히 박정희가 좋아한 술이라 알려졌다. 나는 너무나도 준수하고 흠잡을때 없는 위스키에 별 매력을 못 느끼겠다. 발렌타인 21과 함께 딱 대중들이 좋아할 맛이다. 거칠게 핡퀴는 독한 양주의 느낌이 사라졌다. 이게 좋을수도 있고 나쁠수도 …

요즘

어제부로 치아의 신경치료가 끝났다. 도합 네번의 방문에 4시간여의 시술 과정 속의 나란 존재는 참 속절없이 무너졌다. 무아의 기분으로 입을 벌리고 따끔한 마취제를 맞고 온갖 기분나쁜 소리와 진동을 건뎌내야 했다. 때론 신경이 놀래 움찔하거나 짧고 굵은 비명이 아닌 소리를 내기도 했다. 긴장으로 발끝이 쭈뼛서고 허리는 잘록하게 아치를 그리며 들어올려졌다. 흡사 첫경험중인 여인이 생경함으로 제발 빨리 끝나기만을 고대하는 것 같이. 신경의 촉수는 등어리에 차가운 땀을 맺히게 했다.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바보스런 결정에 후회가 되기도 했다. 어릴적 치과에 가서 이 뽑는걸 세상에 가장 큰 고통이라 여겨 어떻게든 달그락 거리며 지냈던 나와 대략 5년전 살짝 깨진 어금니를 방치한 나를 책망한다. 초기 선제 대응이 중요했던 것인데. 관리만 잘 하면 괜찮을 거야란 만용을 부린 댓가였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건치의 유전자는 망상이었다. 관리의 소흘을 틈타 썩은 이는 차근히 도사렸다. 요즘 이상하게도 무언가 부서지고 깨지는 일이 잦다. 밥먹다가 코렐의 국그릇이 갑자기 주저앉아 깨졌고, 락앤락 유리 용기, 머그컵이 예상치 않게 툭 갈라지며 깨졌다. 식탁의 다리가 터지듯 갈라져 교체 수리를 받았고, 지금 빨래를 마치고 세탁기를 여니 먼지 필터가 체결에서 떨어져나와 내부의 플라스틱 기둥들이 부러져 나왔다. 무려 8년을 사용한 아이폰도 아들이 떨어트려 액정이 부서졌다. 주차중 옆차와의 …

Jewel

어제 TV채널을 돌리다 보니 이제 잘 안보는 JTBC 뉴스룸에서 재즈 싱어 나윤선의 인터뷰를 하더라. 잘 모르는데 유럽쪽에선 인지도가 상당해 보인다. 인터뷰에 이어 라이브 공연을 한곡 했다. 내가 처음 팝송을 접하고 좋아했던 가수는 여자 팝가수였다. 80년대말 티파니, 데비 깁슨, 마티카의 노래를 들으며 귀와 감성이 틔였다고 할까. 그 후로 점차 밴드 음악, 록음악을 좋아하게 됐지만 근본에 깔린 감성의 취향은 여자 보컬의 그 무언가(아련함) 이다. 청소년기 당대의 디바는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온, 머라이어 캐리 등이었다. 마돈나, 신디 로퍼들은 바로 앞선 세대 였고, 시네드 오코너는 변방(아일랜드) 느낌이 강했다. 90년대에 들어서 독보적인 개성의 여자 보컬이 득세했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크랜배리스의 돌로레스 오리오던과 앨라니스 모리셋트, 포 넌 블론즈의 린다 페리, 노 다웃의 그웬 스테파니 등은 너무나 특출했다. 수잔 베가와 다이도의 단아한 음색이 좋기도 했지만 흑백 티비 화면속의 조안 바에즈의 청아한 포크송에 마음이 심쿵했다. 아무래도 춤추는 팝 가수 보다는 기타 치며 노래하는 싱어 송라이터에 끌렸다. 리사 로엡의 stay (I missed you) 도 무척 좋아했던 노래다. 사족이 길었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최고의 여성 싱어 송라이터는 쥬얼 이다. 대학생때 처음 쥬얼의 노래 Foolish game 을 듣고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녀는 1974년생. 요즘의 아델이나 테일러 스위프트 보다 …

차선택

소비재 중에 가장 비싼 것 중에 하나가 자동차 일 것이다. 집 다음으로 란 말이 선행되었어야 정확한 문장이 될려나. 요즘은 자동차의 공유서비스가 활성화 돼서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하지만 애기가 있는 상황이면 자동차는 집만큼 중요하다. 안전과 편의 그리고 사용빈도 면에서 소유하는게 맞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자동차를 참 좋아했다. 취학전 심심하면 도로가에 앉자 지나가는 차들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각각의 차들의 얼굴이 캐릭터가 있는 사람 얼굴같이 느껴졌다. 푸근한 엄마같은 시내버스에 하얀장갑을 끼고 한 손으로 매달려 출발 신호를 똑똑 두드리는 버스안내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만원버스를 다루는 그들의 능숙한 솜씨에 나는 반했었다. 우리 엄마가 버스안내양이었다고 친구한테 거짓말한 기억도 시커멓고 매캐한 디젤 매연도 눈에 선하다. 부모님은 평생 뚜벅이로 사시느라 우리집은 가족같은 차에 대한 추억이 없다. 중학교때 이사한 집의 방 한켠에 산더미 같이 쌓인 자동차생활이란 잡지를 보며 차에 대한 지식(관심)을 습득했다. 포르쉐911과 동그란 쌍헤드라이트인 80년대 BMW M3는 드림카 였다. 마력과 토크, 최고스피드가 저절로 외워졌다. 차에 대한 관심은 실제 소유하고 운행하면서 점차 없어졌다. 아무리 멋지고 비싸다 해도 차의 본질은 이동수단이고 그것의 효율에 대해 현실적인 관점이 생겼다. 지금 타고 있는 차가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며 그나마 친환경 이어서 더욱 그런 생각이 확고해 진 것 같다. 그래서 처음 …

뷰티풀 보이. 2019

쪼잔하게도? 이 영화를 보고 와서 집에 있는 사탕류를 감춰버렸다. 요즘들어 아들이 단것에 너무 집착을 보여 어쩔 수 없이 하나만 하나만 하는 귀여운 손짓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금지하면 욕망을 낳는다지만 계속 먹게 내버려 둘 순 없는 처지. 자식을 키우며 사소한 것에도 딜레마에 맞닥뜨린다. 하지마. 위험해. 그건 안돼. 를 수십번 반복하게 되는 현실, 과연 나는 아들을 위해 잘 하고 있는 걸까? 얼마전 보았던 벤 이즈 백이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입장에서 서술하였다면 이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의 심층적 관계를 더 깊이 파고든다. 마약중독자 가정이 어떤 고통을 받고 인내하는지를 다룬 쌍둥이 같은 영화라 같이 보는걸 추천한다. 영화를 보면서 눈가에 눈물이 번져나갔다. 아버지의 심정에 빙의 되어 안쓰럽고 먹먹하고 가슴이 찢어졌다. 저렇게 이쁜 아이들이 약물에 빠져 좀비처럼 변해가는걸 목도하면서 영화속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왜? 왜?를 화두처럼 묻게 된다. “네가 중독된 게 내 잘못이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나서 내 나름의 결론을 냈고 지금은 원작인 책을 보고 있는데, 영화에서도 표현됐듯이 부모의 이혼이 남긴 상처들이 아이의 마음에 큰 구멍을 낸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5살 밖에 안 됐는데 엄마 만나러 왔다갔다 혼자 비행기 타야하는 삶. 아빠가 새엄마랑 결혼할때 소년의 표정이 말해주는건 가슴속 불안, 공허와 결핍이 눈에 비춰졌다. 직전에 …

벤 이즈 백. 2019

벤이 돌아왔다. 제목대로 벤이 돌아왔는데 긴장감이 흐른다. 그는 약물 중독 치료를 다 마치기 전 집에 돌아온 것이다. 일년전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집에 돌아와 사고를 친 모양이다. 엄마는 일면 아들을 반기지만 내심 불안하다. 불안과 초조의 눈초리. 77일째 약을 끊은 아들을 믿어 보지만 결국 중독자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내용은 하루동안의 소동이지만. 마약중독자의 가정은 단순하지가 않다. 중독자를 둔 가족이 얼마나 힘들지를 엄마역의 줄리아 로버츠와 아들역의 루카스 헤지스의 명연기에 가슴이 절절하다. 다 포기해도 엄마만은 아들을 끝까지 믿고 지키려 노력한다. 피눈물 나는 헛된 수고와 기대의 반복. 그 심정의 절박함이 긴장감을 만든다. 그가 다시 마약을 할까 말까 아슬아슬하게 몰입감이 질문하게 된다. 왜 (그들은) 그토록 마약에 취약할까? 이 영화에 이어서 현재 개봉한 뷰티풀 보이를 보면서 아버지의 심정으로 울었고 중독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걷는 듯 천천히 _ 고레에다 히로카즈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60 영화 속에 그려진 날의 전날에도 다음날에도 그 사람들이 거기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영화관을 나온 사람으로 하여금 영화 줄거리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내일을 상상하고 싶게 하는 묘사. 그 때문에 연출도 각본도 편집도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1

차차차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차를 바꾸려는 계획이 있다. 십여년간 차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2004년 2월에 신차를 사고 한 5년간은 자동차 동호회 사이트에서 줄기차게 정보를 얻으며 왠만한 부품 교체는 내 손으로 했다. 점화 플러그, 점화 코일, 배터리, 도어 캐치, 흙받이, 전구, 필터류 등. 직접 할 수 있는 부분을 스스로 했을때 별 것 아니지만 차에 대한 애착이 강화된다. 부품을 지속적으로 갈아주면 계속 운행이 가능하나 문제는 철판의 부식이다. 내가 제대로 관리 못 한 부분도 있지만 2007년 이전의 현대/기아 차의 녹은 유명하다. 이 것은 안전에 관한 치명적인 염려를 일으킨다. 생각보다 내 차는 뒷바퀴 휠 하우스 쪽 부식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찍히고 찌그러진 곳의 도장이 깨져 녹이 생겼다. 당장 철판이 보여 부식이 안된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 찌그러진 꺽인면의 도장이 갈라져 녹이 생길 수 있다. 차량 외관은 사소한 것이라도 방치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반면에 16만 5천 킬로미터를 뛴 구동계는 너무 멀쩡하다. 사실 몇 년 더 타도 괜찮은데 아무래도 자체의 안정상 이라는 이유가 크다. 차량의 운영중, 큰 고장이 발생하여 수리비가 들진 않았다. 다 교체 기한이 되어 발생하는 유지, 보수 비용 정도 였다. 하지만 구입 초기에 트렁크 쪽으로 물이 새는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