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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

내차는 2004년 2월 식. 16만 킬로미터를 목전에 둔 차량이다. 이 차와 함께한 시간들, 사람들을 추억해 보너라면 감개무량의 감회에 빠져든다. 나는 아직 중년이지만 차에 앉으면 노년의 노쇠한 기분이 전염된다. 아직 잘 달리고 서고 큰 문제는 없지만 매년 추위가 시작되면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 조금 감상적으로 된다. 분명 폐차때까지 탈 건데 그 시간이 언제 올려는지 가늠이 안된다. 전기차의 시대가 좀 더 빨리 도래하면 좋을텐데, 아직은 선뜻 바꾸기 애매하다. 그동안 이 차와의 추억은 계속 쌓여진다.

요근래 차와 관련해서 황망한 일이 두 건 있었다. 이렇게 글로 적어두는 이유는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황망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엊그제 일요일 외출을 앞두고 차에 문이 안 열리는 순간 심장이 출렁였다. 애기를 카시트에 채우는 사이 아들이 잠금 버튼을 눌렀는데 나는 별 생각없이 키를 받아 뒷 좌석에서 바로 시동을 키고 내려 뒷문이 닫히는 순간. ! 아차 싶었다. 아마도 예열을 하기 위해 뒤 좌석에서 시동을 먼저 켜 둘 라고 한 건데 이런 결과가 올 줄이야.

부랴부랴 보험 회사 긴급출동을 불렀는데 출동 기사의 음성은 흔한 일이라도 되는듯 여유롭다. 10분이 넘어가니 창 밖에서 을러주는 엄마 아빠가 지겨웠는지 애기가 슬슬 보챈다. 선선한 날씨여서 다행이긴 한데 너무 늦는다. 두번째 위치 확인 전화를 했을때 참고 있던 화가 폭발했다. 그것의 촉매제는 한석규스러움이었다. 유독 허허~거리며 여유있고 능글거리는 특유의 톤. 오자마자 내가 사과하긴 했으나 아기와 관련한 마음이 급한 상대에게 그런 대응은 짜증을 유발했다. 119에 자초지정을 말하고 주소를 불러주는 사이 길 끝에서 드디어 출동한 차가 보였다. 일이 마무리 되고 생각해 보니 아기와 관련된 위급사항은 119를 부르는게 현명한거 같다. 짧은 통화였지만 119상황실의 대처는 신속하고 믿음이 갔다. 시간을 재진 않았지만 대략 20여분이 넘어서 왔다. 한여름이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다. 누구를 탓하기 보다 나를 먼저 질책해야 한다.

얼마전에는 아기를 데리고 나간 첫 광화문 나들이 였는데, 주차된 차가 없어져 황망히 서로를 쳐다봤던 일이 있었다. 세종로 주차장에 가려고 했는데 잘 못 들어선 골목이, 나오는 출구였고 바로 옆 세종문화회관건물이 만들어낸 그늘에 쭉 다른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차를 댈 수 있는 한 자리가 있었는데 깨진 창문 이론 처럼 뭐에 홀린듯 다른 차들도 댔으니 나도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의 한산한 시내 분위기는 모든것에 너그러워보였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여섯시간여 동안 차에 전혀 신경을 안 썼다.

아 망했다. 그제서야 차의 증발이 엄연한 현실로 돌아왔다. 밤이 되었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분주해졌다. 우리는 은평구의 견인차량보관소에 가기 위해 교보문고 앞 대로에서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20여분 발을 동동 구른 결과 겨우 택시를 타고 곤히 모셔져 있는 내 차와 조우했다. 견인료,보관료를 무려 56,000원을 내고. 주정차위반 과태료는 나중에 따로. 아 이런 멍청한 피해가.

엊그제 과태료 고지서 나왔던데 다시 생각하니 급 피곤해지네.

사진은 단종되었어도 여전히 나의 드림카.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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