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영국 가수 하면 우리는 듀란듀란, 왬의 조지 마이클, 컬처클럽의 보이 조지, 퀸의 프레디 머큐리 정도를 알래나. 듀란듀란은 문화방송에서 생중계? 내한공연을 해주기도 했었다. 순정 만화의 남자 주인공들이 하얀 옷에 기타 메고 연주하니 누나들이 까무라치는 광경들이 생생하다. 그들과 동시에 80년대 중반 영국에선 The Smiths 란 밴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들은 90년대 브릿팝의 아버지, 선구자, 일 수도 있겠다. 쟁글쟁글한 기타 사운드에 현학적인 가사, 곧 스톤 로지스가, 이어서 스웨이드-블러-오아시스가 그런 계보를 이어가며 브릿팝은 세계를 제패했다.
우리에게 생소한 이 스미스란 밴드는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남.녀 주인공이 좋아하는 밴드다. 스미스의 음악이 중요한 연결고리로 나온다. 그 외에는 이 밴드의 활동 기간은 짧았고 지극히 영국적인 특성이래서 팝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다면 이 밴드의 보컬리스트 이자 작사가인 모리세이(Morrissey 모리씨 라고도 부른다)는 더욱 생소한 존재다.(밴드가 해산하고 오래 솔로로 활동을 했다해도) 참고로 2012년에 모리세이는 한차례 내한공연을 했음.
이 영화는 모리세이의 젊은 시절, 즉 ‘더 스미스’가 결성되기 바록 직전까지의 한 인물의 성장기를 다룬다. 가장 비슷한 영화로는 존 레논의 비틀즈 탄생 이야기인 ‘노웨어 보이’가 생각난다. 둘 다 영화의 끝맺는 지점이 ‘이렇게 역사의 발걸음은 시작되었다.’ 식의 마무리여서 아무래도 이 뮤지션들의 팬들이 보는 감흥과 일반인이 보는 입장이 사뭇 다를 것이다.
나는 90년대 스웨이드를 기점으로 블러, 펄프, 버브, 오아시스를 듣다가 그들의 선배, 선배들을 찾아 스미스를 알게 되었고 모리세이의 가사에 빠졌다. 음울한 위트가 낭랑낭랑한 그의 목소리를 통해 울려 퍼졌다. 당연히 기타리스트에도 눈길이 갔는데 그 땐 잘 몰랐지만 리듬 기타에 있어 자신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만든 사람이다. 그 이름은 조니 마.
이 영화의 후반부 모리세이가 절치부심 끝에 드디어 조니 마와 조우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데서 영화는 마무리 된다. 몽타지 편집으로 고요한 공간들을 보여주며 이제 곧 ‘더 스미스’가 영국을 들썩이게 할 거라는 암묵적 예고를 보여주듯이, 모리세이가 조니 마 집앞에 나타나는걸로 영화는 끝난다. 레논 앤 매카트니. 믹 재거 앤 키이스 리차드 이후로 전설적인 작사 작곡 콤비가 만들어지는 순간인 것이다.
솔직히 영화 자체로 보면 지루한 면이 있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인물이 선천적으로 병약하고 우울한 자아를 가진 사람의 지지부진한 일상들이다. 자기 한계를 깨기까지 한 사람이 얼마나 부단한 고통의 시간을 건너와야 하는지 영화는 섬세하게 그린다. 이러한 부분이 이 영화의 미덕이고 감동적인 부분이다. 고뇌와 방황 좌절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한걸음 내딛을 수 있는 일말의 용기를 젊은 스티븐 패트릭 모리세이를 통해서 엿 볼 수 있다. 누구나 스타가 되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열망과 노력, 용기가 인생을 뒤 바꿀 수 있다는 전기적 교훈이다. 스스로 문 밖을 나와 타인의 문을 두드릴 때. 드디어 나비가 된다. 그렇게 모리세이는 세상에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