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이 영화를 보았다. 이윤기 감독의 [멋진하루]를 봤을 때의 즐거움이 떠올랐다. 일상의 소박한 로드 무비는 타인의 삶을 엿보는 희열을 준다.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군상들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거두절미 하고 이 영화의 특정 씬에서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아! 좋은 연기란 이렇게 무의식의 영역까지도 울림을 주는구나.’
주인공 미소가 한대용(배우 이성욱)을 만나는 에피소드는 정말 뭉클했다. 타인의 절절한 아픔에 측은지심으로 나까지 눈물을 찔끔 짜는 정도였다. 나는 이러한 점이 (영화)예술의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음이 닿아 부딪혀 폐부를 찌르고 어루만져주어 더 이상 자기 안의 뭔가가 흐르거나 텅 빈 상태를 방치하는 것이 아닌 자기 치유의 상태. 상대를 바라보지 못하는 시선과 갸날프게 떨리는 억양, 맥아리 없는 말꼬리. 단숨에 감정이입되었고 그의 사연 모를 슬픔은 우리들 공동의 불안에 기대어 있는게 아닌가 싶다. 배우자에 버림받고, 부동산의 덧에 걸려 빛에 허덕이는 상황. 누구든 저런 상황이면 우울증에 안 걸리겠나. 미소가 정성스레 밥을 차리고. 청소를 해 주고 같이 담배 피며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만으로도, 그는 절망을 벗어나 한 발을 디딜 수 있는 희망을 얻은 거였다.
몇년전 십여년만에 다시 찾은 뉴욕에는 젊은 거지들이 꽤 많았다. 그들의 특징은 조금 덜 누추하고 조금 더 꺼리낌 없고 개와 기타를 끼고 있다는 거였다. 이들을 통해 단적으로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시장의 폐해가 고스란히 보였다. 내 마음속엔 십여년전 뉴멕시코주 산타페 에서 본 커트 코베인을 닮은 금발의 젊은 거지가 쓰레기통을 뒤져 피자를 먹던 충격이 떠올랐다. 영어에 대한 부담만 없었더라면 충격이 추억으로 바뀌었을텐데 아쉽다.
이 영화의 제목은 작은서식지. 집을 버리게 된 최소한의 삶을 영유하는 여인에 관한 보고[寶庫]다. 보는 이에 따라 궁색한 주인공의 모습에 안 쓰러운 마음이 내내 들수도 있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되게 용기있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여인의 발자취로 보였다. 가난할 지언정 그녀의 인격은 초라하진 않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위스키와 담배는 집을 포기하더라도 버릴 수 없다. 뭔가 어불성설 같지만 인간이 궁극적으로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한다는걸 이해한다면 그녀의 선택도 수긍이 간다. 가뜩이나 젊은층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법점하기 힘든 집값은 안드로메다로 갔다. 이 영화는 매우 함축적으로 현 세태를 풍자한다. 빈곤한 젊은 층이 삶을 영위하는 방식을 주인공 커플로 보여주고 각양각색의 인생들을 보여준다. 그런 삶의 선택을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삶이 결국 무엇인지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숙고하게 만든다.
인간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거대한 숫자들의 빌딩 숲 아래 작은 텐트에 불 들어온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고 여운이 길었다.
얼마전 주말 이른 아침에 자전거로 동네 한바퀴를 돌다가 마주친 20대 젊은 여인을 보았다. 대형 마트 옆 벤치에서 자고 막 일어나 침낭을 주섬주섬 챙기는 모습을 보며 적잖이 놀랬다. 소공녀가 떠올랐다. 미소가 떠올랐다. 이솜이 떠올랐다. 오피스텔 월세에 살면서 본 주차장 안 태반의 고급 외제차들이 떠올랐다.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며 생각이 골몰해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