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율이가 태어난지 열 달이 됐다.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이건 꿈과도 같은 일 이구나. 우릴 닮은 아기가 매일 아침 아장아장 기어와 머리맡에서 일어나라고 손을 휘두른다. 피곤에 쩔어 무거운 몸을 일으키면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한 번도 아프지 않은 아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요즘 티브이엔에서 방송하는 선다방을 처음부터 보게 되었는데, 첫 방송은 시큰둥하게 또 짝짓기 프로그램이군 하며 무덤덤하게 보았다. 그러다 지난 주말 방영분을 보다가 빵 터지게 웃겼고 설렘이 전염되는 듯한 재미를 느꼈다. 동화작가인 여자와 웹툰작가인 남자의 만남은 방송이래도, 설레이게 순수했다.
_ 여자 : 저는 예술가 부부가 꿈이에요
_ 남자 : 저도 예술가 인가요?
_ 여자 : (웃으며) 그럼요! 당연하죠.
_ 남자 : 저는 술, 도박, 여자 안 합니다.
_ 여자 : 저도 남자 안 합니다.
_ 남자 : (수줍게) 이제 하셔야죠.
자리가 마무리 될 무렵, 고민 상담 쪽지에 남자는 ” 감정표현이 너무 서툴러요” 라고 썻는데 잠시후 다시 꺼내 아랫줄에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라고 추가했다.
뭔가 멀지 않은 과거가 까마득했다가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런 인생일대의 사건을 거치고 이런 아기를 얻었다는 마법은 참 경이롭다. 인연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작용이 오늘날 인류를 지탱하게한 원동력이다. 출연자들의 성공과 실패에서 지나간 내가 보였다. 남을 엿보는 일차적 쾌감을 너머서 과거의 나를 마주하게 하는 힘은 명치에 어퍼컷을 날리고 싶은 기분이 들게 했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터닝 포인트를 넘은 나는, 과거를. 설렘을. 현실로 가져와야 한다.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이를테면 매일 기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자 하는 다짐. 그로 인한 긍정적 사고와 행동. 과거를 후회가 아닌 배움으로 받아들이는 정신. 행복은 내 안에 있다는 자각은 수시로 나를 일깨운다.
아들을 바라본다. 아장아장 기어다니는 것도 잠시 한 때 뿐이다. 더 많이 마음의 눈에 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