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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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위스키를 마셔온지는 꽤 됐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식도를 핥고 지나가는 짜릿함을 종종 즐겼다. 처음 위스키에 입을 댄 것은 대학때 였다. 그 때 나는 용기가 필요했다.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걔는 누구를 좋아함에 경계가 없었다. 어제 나랑 데이트를 하고 오늘 어떤 남자 등뒤에 매달려 오빠 달려!를 외치며 쐐~앵 오토바이가 지나가더라고 후배가 와서 알려주었다.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우리는 종로에서 데이트를 하며 ‘오 수정’도 같이 보았다. 손 한번 못 잡아봤지만 그 영화를 보았다는게 무척 대견스러웠다. 장롱위에 나열되 있던 양주 박스에 손이 간 건 그 즈음 이었다. 시바스 리갈 12년. 나는 형들이 추억삼아 얘기 하는 캡틴큐나. 나폴레옹의 사악함은 겪어보진 못했다. 어떤 형은 학교 과학실의 알콜램프의 알콜에다 보리차 섞은 맛이라 했고, 누군가는 그냥 신나(시너)를 마시는 거라 했다. 나는 캡틴큐를 마셔야 했다. 속에서 쓸어버려야 했다.

시바스 리갈 12년은 식도가 얼얼했지만 사악하진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취기가 올랐고 용기가 생겼다. 전화를 걸었고 취중고백을 해버렸다. 그렇게 위스키는 인생의 달고 짜고 쓴 순간순간에 동거동락하는 사이가 되고 있었다. 왜 20대 때는 끝도 없는 상실감에 시달렸는지 모르겠다. 나의 모든 용기는 끝,에 맞춰져 있었다.

첫 위스키의 맛은 기억나진 않지만 뜨겁고 싸한 물이 목구멍의 감각을 마비시키며 휘발됐다. 위스키의 맛을 알아나가는데 블렌디드 위스키의 대표적인 브랜드 조니 워커 (블랙 라벨), 시바스 리갈 12. 발렌타인 12.는 입문격으로 알맞다. 가장 유명하고 어디서든 구할수 있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적당한 편이다. 개인적으로 조니 워커 블랙을 가성비가 가장 뛰어난 술로 꼽는다. 위 셋 중에 가장 많이 마셔 보았다. 시바스 리갈 12도 좋지만 발렌타인 12는 별로였다.

위스키에 눈을 뜨게 한 것은 조니 워커 (블루 라벨) 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로 평가된다. 이걸 마시는 순간 회장님들의 미소가 떠올랐다. 중후하고 그윽한 훈연 향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싼다. 목젖을 달콤한 카라멜 향으로 어루만지며 식도를 타고 흐르는데 ‘크~하~’ 가 아닌 입꼬리가 올라가는 므흣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 위스키란 이런 것 이었구나.’

아무래도 면세점에서 산다 해도 블루라벨은 가격이 쎄서 10만원 아래의 위스키 위주로 마셔 왔다. 앞으로는 위스키 시음 노트를 작성해 볼 요령이다. 요즘 나의 유일한 호사어린 취미인 위스키. 책장엔 글렌피딕 18년. 발렌타인 21년, 잭 다니엘 싱글 배럴이 있다. 박스와 병 너무 이쁘다. 보기만 해도 좋다. 라가불린 16년을 구하러 남대문 이라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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