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흔하게 내뱉는 말들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가장 빈도수가 많은 말로는 공히 ‘까꿍’ 과 ‘지지’ 일 것이다. 까꿍이야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반가움의 표시 이지만 지지란 말에는 어떤 위생에 대한 위험의 경고가 내포되어 있어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셀 수 없는 지지를 들으며 성장해 왔다. 지지의 하면 안돼. 다쳐. 를 통해 우리는 위험을 배제하고 안전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습득하게 되지만 그 부정의 말들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번뇌의 장으로 몰아갔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욕망을 조절 하는 훈련. 훈육이란 이름의 본능 제어는 인간의 성장에서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되지만, 여하튼 어른들이 무심코 하는 말들을 고찰해 볼 필요는 있다. 언어의 습관이 과연 정서에 영향을 줄까.
7개월째 접어든 아기가 신나게 뒤집고 기어다니는 와중에 무언가에 부딪혀 운다. 재빨리 아기를 안아 품으로 감싸 머리를 쓸며 “누가 그랬어. 우리 이쁜 아가 누가 그랬어.” 하며 달랜다. 부딪힌 애꿎은 놀이기구를 “뗏지, 우리아가 아프게 했네.” 탓하며, “누가 그랬어. 누가” 아기는 금새 울음을 멈춘다. 이것은 장모님이 우는 아기를 달래는 방식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풍경이지만 저런 말들이 한국인의 좋지 않은 특성을 만들겠구나(만들었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내 탓이 아닌 남 탓. 책임전가의 정신은 그렇게 유아기 때 부터 습득 할 수 도 있다 란 자각에 나는 좀 더 숙고해 졌다. 총각때, 부모님이 주중에 어린 조카를 키웠는데 얘가 먹는걸 싫어해서 따라다니면서 먹이는걸 타박을 주곤 했다. 간혹 조카가 넙죽 잘 받아먹을때마다 어머니는 우리 손주 최고. 최고를 남발 하셨다. 그렇게 우리집에서는 한동안 최고란 칭찬이 최고로 말해졌다. 그 때 나는 아무래도 칭찬의 말을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자꾸 그런말 들으면 애가 아무래도 배려심 없이 자기만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가족들에게 당부 했었다. 세월이 지나 보니 어느정도는 내 말이 일리는 있었다. 동갑인 두 조카녀석들이 노는 모습을 보다 보면 분명 그런점이 관찰되기도 한다. 또한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 때 우리 엄마는 ‘너 ~하면 누가 잡아간데’ ‘저 아저씨가 이 놈.. 잡아 간데’. 그런 말들을 많이 썼다.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나는 시대의 공포를 체득했다. 말과 글로 다 설명하지 못하지만 분명 그런 말들이 나의 정서에 끼친 영향이 있었다. 어른들의 위압감에 눌려 소심함이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다. 불신과 공포조장은 이렇게 어린아이 까지 영향을 끼쳤다. 자라나는 애들에게 어른들의 말 한마디는 작고 깊은 연못에 두꺼비가 뛰어들어 큰 파문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결국 맑은 물에 흙탕물을 일으켜 물을 탁하게 만든다.
어느날. 나는 한국인의 (나쁜)의식은 어디서부터 기인하는가 라는 생각에 골몰하던중 자잘하게는 시대의 욕망과 의식이 만들어낸 무심결의 말들이 전승 되어 한국인의 정서를 만드는 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정말 ‘누가 그랬나요?’를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