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Leave a comment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회

클래식 음악의 생무지가 초대권을 얻어 무심코 연주회에 갔더니 심신이 심히 피폐해졌다. 손열음을 사람 이름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어떤 줄임말 인줄 알았다. 손 아무개의 열린 음악회. 뭐 그런걸로. 연주회 시작 시간이 3시여서 점심시간에 맞춰 잠실 롯데 콘서트홀에 도착했다. 거대한 쇼핑타운은 저인망 그물이 싹쓸이 하듯 모든 주변의 상권을 초토화 했다. 다른 동네 구경은 거리의 풍경을 맞닥뜨리며 산책의 형태가 맞는 일인데 건물 밖으로 나갈 엄두가 안났다. 이 삐죽한 건물이 다 집어삼켰기 때문에 할 수 없이 30분 넘게 빌딩안 식당의 대기줄에서 죽쳤다. 이 안의 다른 식당도 마찬가지여서 체념하고 대기줄에 기다려야 했지만 은근 대기업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다행히도 에비동은 맛있었다. 곧 윗층의 콘서트 홀로 올라가 자리에 잡았다. 상층의 맨 앞열이었는데 다리를 둘 공간이 불편했다. 클래식 공연 전문 홀은 청주 예술의 전당 이후로 두번째다. 그때의 공연과 적당한 공간이 참 좋았다. 이 롯데 홀은 꽤 컸지만 웅장하다거나 멋드러지기보단 그냥 현대적인 회관 같은 느낌이었다. 연주자는 정시에 나와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소곤거리는 피아노 소리는 자장가 같아서 처음부터 졸음이 몰려왔다. 뭔가 예감이 안 좋더니만 연주는 둘째치고 음향이 별로 라고 느꼈다. 나의 클래식 문외한을 넘어서는 구청 회관에서 열리는 학예회 같은 그랜드 피아노 소리 였다. 어쿠스틱 악기의 숨결 하나하나 느끼는게 이런 연주회의 관건일텐데 소리의 해상도가 거의 없었다. 아마도 홀 전체의 PA스피커 사용이 약해서 소리의 볼륨감이 없어진게 원인이 아닐까 싶다. 한 시간의 연주가 까마득했다. 연주가가 퇴장하더니 30분간의 인터미션이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는 대신 가지고 간 김훈의 공터에서를 읽었다.

다시 사람들의 차리가 채워졌고 한 남자가 여자 무용수 네명을 거느리고 나왔다. 반짝이는 옷이 아니고 멀쩡한 수트래서, 성악가 인가 했더니 미러볼에 알록달록 조명이 반사하는데 흡사 영등포 뒷골목의 무도장을 방불케 했다. 더구나 가수의 마이크가 안 나와 한 차례 머슥하게 중단되어 방송 녹화 하는 것인양 능글맞게 가수가 처음부터 다시 입장하며 시작했는데 그는 트로트 가수 박현빈 이었다. 아무래도 클래식도 콜라보레이션을 하겠지만 트로트 라니 힙합이 아닌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MR반주는 조악했고 노래는 인위적으로 갈라지는 목소리에 멱따는 창법이 참 싫었다. 두곡을 하는데 말은 왜이리 많은지 확실히 행사 전문 가수 답다. 다시 손열음이 나와서 피아노와 협연 했는데 클래식과 트로트의 콜라보는 특이하긴 했다. 너무 만담이 많아서 이게 뭔가 싶었다. 멋드러진 드레스가 무색하게 대화는 기품이 없었다. 드디어 그가 들어가고 바이올린리스트 가 나와서 피아노와 협연했다.

졸음을 극복하고 집중하기도 했지만 잘 모르겠다. 좋은 연주 인지. 어떤지. 음악을 잘 몰라도 무언가 전달 되는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게 오지 않았다. 무려 2시간 반이 흘렀고 자발적 고문같은 심정에 심신이 너덜너덜해졌다. 차라리 교향악단이나 쿼텟이었으면 좋았을걸. 내가 왜 이렇게 아무런 감정도 못 느낀 공연 후기를 주절거리고 있나. 무의미 했기 때문에 버려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애도 삼아 기억하려고. 박현빈 버전으로 클래식 피아노 죽여~줘~여~. 그나저나 클래식 좋아하는 친구를 사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어깨넘어 배우기라도하게.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