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편백나무 숲에는 어떤 향이 날지 궁금했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잠시 떠나있기를 희망했다. 어디를 가야 하는지는 오래지 않아 결정 되었다. 비교적 멀어서 잘 안 가게 되는 전라도, 그러나 언젠가 한번은 꼭 가리라는 장성의 편백나무 숲. 국내 여행의 버킷 리스트 중에 한 곳은 지워지고 있었다.
아마도 영화 ‘그해 여름’ 에서 이 숲이 배경이 되는 장면이 있었다. 어렴풋이 저기를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수애를 사모하는 마음만큼 커졌다. 인터넷에서 축령산을 검색하면 남양주의 축령산이 더 많이 검색된다. 장성은 서울에서 너무 멀어서일까. 이 곳의 숙박을 찾아보니 금곡영화마을이란 데가 있었는데 이 마을에서, 서편제를 비롯해 여럿 영화의 촬영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많은 숙박시설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검색과 문의 끝에 우선 한 펜션의 작은방을 이틀 예약했고 나머지 하루는 광주로 이동해 무등산을 등산하고 돌아오는 일정으로 정했다.
갑자기 옆지기가 부모님과 같이 가는건 어때? 라고 물었다. 정말?. 그런데 이미 예약 다 잡았는데, 바람쐬시게 같이 가는게 좋겠다. 는 그녀의 의견에 나는 잠시 생각해 보고 전화로 의견을 타진했다.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그래서 펜션에 전화를 걸어 더 큰 방이 있나 문의했으나 이미 예약이 다 되었다고 한다. 고심하던중에 펜션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마도 예약 취소를 할까봐 미리 호의를 푼 것 같다. 작지만 방과 주방이 분리되 있어, 가능하겠다고, 오시라고. 그렇게 소박한 바람쐼이 시작 되었다.
새벽 부터 움직여 서울을 빠져 나왔기 때문에 시간이 널널했다. 흐린날이어서 인지 더욱 선선하게 느껴졌다. 휴게소 두개를 이용하며 네시간여만에 도착했다. 산에 둘러쌓인 작은 마을. 우리는 편백나무향이 짙게 배인 방에 들어섰다. 단장한지 오래지 않은 황토와 편백나무로 마감한 내부의 냄새가 너무 강렬해서 인지 정작 편백나무숲에 갔을땐 향기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급한데로 라면을 끓여 점심의 허기를 달래고 축령산 산책을 나갔다.
임도가 잘 정비 되어 있었다. 이 많은 나무가 개인의 노력에 의해 심어졌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촘촘히 쭉쭉 뻗은 나무들은 나폴레옹의 병정들처럼 일사분란하게 군락을 이루었다. 숲에 오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걷는다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숲이 가진 치유의 자정작용에 맡긴다.
저녁은 바베큐 그릴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불 맛. 이란게 정말 있는지 직화로 고기를 구우면 왜 이렇게 맛있어 지는지 궁금해졌다. 맑은 공기와 불이 만나서 였을까. 알차게 저녁을 먹었고 밤에는 오붓하게 잠을 청했다.
밤부터 내렸던 비는 다음날 계속 비를 뿌렸다. 아침을 먹고 고창읍내에 갔다. 고창읍성은 옛 성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멋졌다. 비가 더욱 내렸고, 선운사를 가려던 일말의 생각이 사라졌다. 관광지의 허접스런 식당에 낚여 맛없는 점심을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계속 축령산의 다른 루트들을 탐방했다. 결국 금곡영화마을에 숙소를 잡은것이 제일 나은 선택이라 확신했다.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즈넉한 숲의 정취가 마음에 들었다. 곧게 뻗은 나무들은 희망이자 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