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이가 제주도 같은 느낌이었다면 오하후는 부산 같은 첫 인상을 받았다. 호놀룰루 공항에서 와이키키에 위치한 트럼프 호텔을 찾아가면서 본 풍경은 번잡했다. 차도 많고 곳곳에 빌딩 건축 현장이 포진해 있었다. 처음 부산의 해운대에 왔을때와 비슷했다. 나른한 해가 저무는 와중에 호텔에 도착했다. 역시나 여기도 전통 목걸이를 차에서 내리자마자 목에 걸어 주었다. 보기엔 이뻐 보이나 코를 갖다 대면 이상한 꼬린내가 났다.
와이키키 해변의 수많은 호텔중, 트럼프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음식 조리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고 비교적 최신 건물이라는 점 이었다. 와이키키의 호텔들은 가격에 비해 건물이 낙후된 곳이 많다고 한다. 호텔의 로비가 1층이 아니어서 내리자 마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고급 호텔이지만 일본적인 실용이 곧곧에 드러난다. 미국적인 호텔 느낌인 크고 넓직넓직한 것의 반대였다. 호놀룰루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일본과 미국이 섞여 있는 느낌이 도시의 곳곳에 드러나 보인다. 버스의 행선지 표시도 일본어가 주된 표기일 정도다. 아마도 이 트럼프 호텔은 일본 관광객을 위한 컨셉의 설계인 모양이다.
3일 동안 있을 이 호텔에 미리 주문한 물건들의 박스를 찾고 정리를 하다 보니 또 하루의 석양이 지고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와이키키 해변을 걸으려고 부랴부랴 나갔지만 호텔 로비층을 구경하느라, 해변에 나가니 이미 어둑했다.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쭉 나열된 고급 호텔들에 켜진 불빛들이 몽환적으로 보였다. 바람은 따듯하고 파도는 나즈막히 부드러웠다. 우리는 이 낭만적인 와이키키 해변을 말없이 걸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은 나였다. 해변 바로 뒤의 쇼핑 거리는 더 환상적이었다. 곳곳에 엑스자로 설치된 횃불 조명이 현대식 도시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야자수와 횃불은 여기가 하와이다 란 사실을 강렬하게 인지시켰다. 오하후의 첫날 밤은 짜릿하게 흘러갔다.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갔다. 다음날은 또 우연찮게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되어 싸웠다. 연애때와는 다르게 부부 싸움의 예행연습을 하듯, 아니면 예방주사였는지도 모른다. 부부가 되는 신고식 이었다.
다음날 아침 창 밖에는 비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여기선 조식을 먹거나 사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가져온 라면과. 마트에서 구입한 식재료로 조리해 먹었다. 차를 주차하거나 꺼낼때마다 팁을 줘야만 했다. 설겆이도 룸 청소 하면서 다 해 놓기 때문에 방을 나올때 팁을 놓고 나와야만 했다. 도시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의 노스 쇼어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가기전 (파인애플 브랜드) 돌 플랜테이션에 들렸다. 전형적인 관광지의 상업적 전략이 뻔히 보이는 데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한 번 하며 들어간 정원은 전혀 인상 깊지 않았고, 세계 최대의 미로 라는데, 정말? 을 되묻게 했다. 이 근방엔 파인애플이 밭이 천지 였다. 북쪽 해안 쪽으로 나가면 서핑의 성지 노스 쇼어가 나온다. 멍청한 지도 때문에 설왕설래를 벌이다. 포기하고 서쪽의 어떤 푸드 마켓에 말없이 도착했다. 비는 계속 내렸고 일찍 호텔에 들어가 스테이크를 해 먹었다.
알라모아나 쇼핑센타는 상당히 컸다. 요즘 하남의 스타필드 같은 대형 쇼핑 타운은 이런 곳을 벤치마킹 했을 듯 싶다. 일본풍으로 디자인 된 건물이었다. 오하후에 사는 일본인이 그렇게 많다는게 새삼 끄덕거리게 됐다. 거리의 주택도 간혹 딱 일본에서 보던 집 이었다. 80년대 경제 호황으로 여기에 주택과 땅을 많이 구입했나 보다.
불행하게도 다음 날 아침에도 창 밖의 하늘은 어둑했다. 비가 오더라도 잠깐 내리고 개인다는건 평상시이고 지금은 우기가 시작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하나우마 베이에 도착해서 스노클링을 했다. 여기는 입장료도 있고, 공원이용 규칙에 관한 브리핑을 받아야 한다. 초승달 처럼 옴폭 들어간 아름다운 만 이었다. 에메랄드 색 투명한 바다도 날이 흐리니 감탄이 반감되었다. 월마트에서 산 싸구려 스노클이라 집어 던지고 그냥 해수욕을 하다 이동했다. 해변을 끼고 노스 쇼어 까지 가면서 유명한 해변에 내려 잠시 바람을 맞았다. 북쪽으로 갈수록 파도는 높아졌다. 날씨가 좋으면 서핑하는 모습을 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지오바니 갈릭 쉬림프 푸드 트럭은 정말 좋았다. 마늘향이 쎄고 새우가 정말 통통했다. 한국인을 위한 메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늘향이 강했다.
쿠알로아 랜치 뒤로 보이는 산은 정말 기이했다. 마치 공룡이 살 듯한 원시적인 풍광이다. 영화 쥬라기 파크의 배경이 여기인 모양이다. 랜치 안에는 사륜바이크 타기. 말 타기. 등등 다양한 체험 코스가 있지만 비가 내리니 해 볼 생각도 없이 기념품 가게에서 우클렐레 하나만 사서 나왔다.
오하후에서의 기억은 많이 남지 않았다. 호놀룰루 시에는 차도 많아서 저녁엔 엄청난 교통 정체도 있고, 어디나 다를게 없는 도시의 모습이었다. 마우이의 한적하고 평온한 느낌이 아닌 도회적 낭만의 도시였다. 하와이를 오게되면 꼭 거치게 되기 때문에 쇼핑 위주로 보고. 다른 섬에서 대 자연을 만끽하면 좋을 듯 싶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빅 아일랜드와. 카우아이. 몰로카이 를 방문하고 싶다.
서울에 도착하니 꽃 무늬 셔츠가 무색하게 때 이른 한파가 몰아쳤다. 10년 후 기념으로 다시 가 볼 생각으로 신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