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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to Texas 2

이 길을 달리고 대지를 음미하며 숨을 고르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행복했다. 태양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황금빛으로 변할때 이 땅의 모든 생명이 기쁨으로 물결쳤다. 빛과 어둠 생성과 소멸의 교차점에서 자연의 환희를 경험한다. 이토록 넓은 대지에서 덩그러니 홀로 달리다 보니 그 옛날  살았을 인디언 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아메리카 들소와 원주민들이 이렇게 한가롭게 들판을 거닐었으리라. 영화나 사진속의 인디언들의 이미지가 아닌, 내가 처음 본 만나 본 인디언은 이랬었다.

십여년 전 유타주의 윈도우 록 이란 지명의 제일 큰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잔 적이 있었다. 필연히 이곳을 들르게 된 이유는 연료 경고등은 들어왔는데 찾아간 주유소는 폐쇄되었어서 궁여지책으로 지도상 가장 가까운 마을인 윈도우 록 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막의 인디언 보호구역내 다 쓰러져가는 트레일러들이 띄엄띄엄 널부러져 있었고 두려움에 점점 눈물이 쏟아질 심정이었다. 황폐한 이런 길 상에서 차가 선다면,, 마음이 다급해서인지 가속 페달을 더욱 밟게 되었는데 이성의 한켠에선 기름이 더 소모될거야. 이러다간 꼭 좀비들이 출몰할듯한 데서 밤을 세워야 할거야. 감정의 폭발이 극에 달할 무렵 조금은 마을이 눈에 보일 듯 싶더니, 또 하염없이 가야 했다. 지도상의 손톱 반 만한 거리가 이렇게나 길 줄이야. 이런 망할. X 됐다. 를 연발할 무렵. 주유소와 마트, 몇몇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려움이 기쁨의 눈물로 바뀌려는 찰나 차의 출력이 줄어들고 있었다. 관성을 이용하여 가까스로 주유소에 차를 세우니 그제서야 공포가 가라앉았다. 안도의 한숨이 너무 깊어서 인지 모래 바람이 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은 마을이라고 하기엔 너무 휑했다. 제대로된 집이 하나도 없이 그저 넓은 마트 주차장과, 몇몇 가게 만이 있을 뿐인 곳 이었다. 마트에서 요기할 거리로 장을 보다가 인디언 아이 둘과 맞닥드렸다. 호기심 가득찬 눈빛이었지만 이방인을 경계하는 기색이 아닌 저 밑 바닥 어딘가에선 동질의 포근함이 서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완벽한 사진적 순간이었지만 당시 카메라가 없었다. 사람들이 착하고 소박해 보였다. 좀 전까지 혼자 느꼈던 두려움이 무색할만큼 선한 분위기에 마음이 놓였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뿌리가 아시아에서 알래스카를 넘어온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나는 직감했다. 우리는 같은 뿌리가 확실하다고.

길을 나선지 처음으로 마음이 편했다. 이런 오지에 까지 중국 식당이 있었지만 이름 모를 햄버거 집에서 저녁을 때우고 한갓진 곳에 차를 대놓고 잠을 잤다. 눈을 떠 보니 파란 하늘에 쨍쨍한 태양이 내리 쬤다. 모처럼 개운하게 늦게까지 푹 잔 셈이다. 광활한 텅 빈 주차장의 한켠에 덩그러니 내 차만 있었다. 비 현실적으로 사람의 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지나가는 차 조차도 전무했다. 파란 하늘을 만끽하고 기지개를 펴고, 침낭을 정리하는 차에 가까운 돌 산 언덕에서 사람이 움직였다. 내게로 오는 중 이었다. 침착하게 하던 일을 하며 긴장 할 수 밖에 없었다. 주변은 고요했다. 곧 인디언 청년이 내 앞에서 말을 건넸다. 이상하게 들리는 영어였다. “실례지만 어디로 가세요?.” ” 잘 모르겠는데 대략, 동쪽으로 갑니다.” “***에 가려고 하는데 태워주실수 있나요?.” “잘 모르겠는데 내가 가는 방향은 그 쪽이 아닌거 같군요.” 이 말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 난처한 내 표정을 읽은 듯 했고 나는 거절의 미안함을 상쇄하려 바로 “잠시만요.” 운전석으로 가서 글로브 박스에서 5달러를 꺼냈다.  “미안합니다. 제가 줄 수 있는게 이것 밖에 없군요.” 그가 웃으며 돈을 받았다. 선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그렇다해도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내리쬐는 햇볕아래 여행객임을 상징하는 뉴욕 번호판의 차와 동양인 한명. 내 앞에 부랑자 인 듯한 원주민 뿐이었기 때문에 다음 상황을 내가 정리해야만 했다. “너무 바뻐서 지금 가봐야겠네요. 미안합니다” 시동을 켜자마자 주차장을 벗어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처음부터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웃고 있었다. 기묘한 순간이었다. 그가 나쁜 마음을 먹었으면 나는 빈 몸이 될 수 도 있었다. 다행이기도 하고, 생각할수록 어쩌면 그를 통해 신이 내려준 용기였을 수도 있다. 당당해 지라고. 부랑자 였지만 궁색하지 않은 태도와 표정이었다. 인디언들은 집과 땅을 잃은채 여전히 사막에 갇혀 산다. 나는 텍사스의 초원을 뛰며 그 옛날 그들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맡으려 깊게 숨 쉬었다.

지난 후에, 미국 정부가 원주민에 행했던 정책들을 알게 되었는데 오랜 학살에 이은 실질적인 말살 과정이었다. 영어를 못 배우게 하고, 술을 무제한 제공하여 알콜 중독자를 만들어 일할 능력을 상실하게 했다. 인디언 보호구역이란 모순적인 말로써 황무지에 유폐시켰다. 이 지역의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서 섬뜩한 전율이 흘렀다. 그러한 과정에서 백인들이 교회를 앞세워 포장한 국가가 미국이었다. 미국 역사에서 교회의 역활은 1주일간의 악행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곳 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백인들의 풍족한 삶은 가증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텍사스 곳곳에 산재해 있는 각종 크기의 석유 시추기는 자기 집 앞마당에도 뒤뜰의 공터에서도 끄덕대며 불을 뿜고 있다. 유전이 개발되면서 잘 살게 되는 졸부의 정체성이 텍사스에 드리운 공기였다. 무료여서 두 번 이나 가게된 달라스 미술관에서 유독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뿌리와는 어울리지 않은 15세기 유럽의 대형 회화와 누구나 알만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은 전형적인 경제력의 과시 같아 보였다. 문화적 뿌리나 토양이 척박한 곳에 억지로 심어진 예술 애호 였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보면 유전 개발을 통한 인간의 탐욕과 교회가 어떤 공생관계인지를 실랄하게 엿 볼 수 있다.

80년대 일요일 아침에 TV에서 방영했던 ‘초원의 집’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다. 이는 1870년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통나무 집에 사는 미국 가정의 이야기 였는데, 아버지를 중심으로 자급자족의 어려움을 통해 개척정신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자기전 고해의 기도를 하고, 일요일에 꼭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가 회개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어릴적 우리는 이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자연스레 가부장제와 기독교 문화를 체득하게 되었지 않나 하는 확신이 선다. 내겐 분명 교회의 빵 보다는 영향력이 강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았음에도 걸핏하면 자기 반성과 기도하는 시늉을 했으니 말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고, 우리의 죄값을 치르셨으며, 다시 사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 누구도 구원을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충분히 올바르게” 될 수가 없는데, 이는 우리 모두가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이사야 64:6-7, 53:6)

기독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셨던 것을 믿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죄값은 지불되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성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고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 순종함으로 동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참된 기독교입니다. <https://www.gotquestions.org>

기독교의 원죄의식은 자아의 주체성을 약하게 만들었고, 전적으로 예수님에게 의탁하게 만든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죄값이 지불되었다고?, 하느님이 모두 떠안으셨으니 재림을 믿는다면 정말 우리의 죄가 사해질까.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대 학살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종교의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죄를 무마하려는 방편으로서의 믿음. 분명 그당시 미국의 백인들은 교회를 나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원주민 뿐만 아니라 흑인 노예에 대해 많은 죄를 지었으니까. 악행에 대한 면죄부 판매소는 교회였을 것이다.

별로 변함이 없을 풍경속을 뛰면서 이 땅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있는 사람들에 대한 상념이 계속 맴돌았다.

In God We Trust 미국의 화폐에 새겨진 문구이자 미국의 공식적인 모토이다. 한 종교가 국가적인 이념인 것에 반감을 가진다고 해도 알다시피 미국의 역사는 독실한 개신교 사람들이 이주해서 시작된 나라이다. 텍사스에선 이런 뿌리가 더 깊고 확실해 보인다. 메이저리그 야구팀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 글로브 라이프 파크에서도 지역 동네에서 열리는 로데오 경기장에 가봐도. 애국과 기독교식 세레모니는 생각 이상 이었다. 대형 성조기는 어딜 둘러봐도 눈에 걸친다. 어디서나 기도는 일상화 되었다.

꼬마가 줏어온 돈을 아빠를 통해 할머니에게 건네는 모습.

위 사진은 로데오 경기장의 식전 행사의 일환 중에 이처럼 미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면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었다. 몇살 미만 어린이들을 필드의 시작점에 세워두고 휘슬이 울리면 땅에 뿌려진 지폐를 줍게 하는 게임?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단번에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런 게임의 밑바탕에는 자율과 경쟁. 땅따먹기를 통한 자본의 쟁취라는 이념이 깔려 있다고 본다. 어린이들에게도 게임을 통해 습득하게 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톰 크루즈 와 니콜 키드맨의 한창 때를 볼 수 있었던, 서부 개척시대를 담은 영화 ‘파 앤드 어웨이’에서의 땅 쟁취하기 장면이 연상됐다.

로데오 경기라는게 결국 소나 말을 인간의 물리력으로 제압하는 것인데, 이는 억압적으로 구속력을 과시하는 형태로 다양하게 쇼가 행사된다. 3~4살 가령의 애기들을 어린 양 등에 태워 로데오를 시키기도 했는데 위험한 짓거리로 보였다. 무얼하든 힘의 과시가 관건이었다. 마초맨의 분위기가 물씬이었다. 카우보이 모자와 컨트리 풍의 음악은 로데오 문화와는 찰떡이었다. 어딜가나 대형 픽업 트럭이 거리의 1/3은 차지했다. 그리고 내가 선망하는 미국 머슬카인 포드 머스탱은 다른 주 보다 유독 많아 보였다.

매일 아침 7시 이렇게 아침 식사를 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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