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집이 마음에 든다. 방의 크기에 비해, 큰 창문이 두개나 나 있어서 좋다. 창문 옆에 책상을 놓고 차를 마시며 인터넷 서핑을 한다. 문득 창문을 바라보니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작은 오피스텔이지만 오롯히 눈과 비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집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오후에 남서쪽으로 떨어지는 해가 블라인드 살을 통해서 늬웃하게 집안에 격자 문양을 쏟아낸다.
벌써 일년이 지났고, 우린 일년만에 이사했다. 단둘이 단촐히 사는 줄 알았는데 이사를 하다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이사일을 전후로 너무 힘들어서 인지 몸살이 났다. 회복이 더딘것은 적당한 나이를 먹은 탓 이니라. 5년전만 해도 한겨울에 자전거 타기를 즐겼는데 이젠 몸을 저절로 사리게 된다. 임신한 옆지기를 나두고 혼자 이사하느라 매우 힘들었지만 수고한 보람과 만족이 가득한 새벽에 이런 글을 쓴다.
전에 살던 집은 복층 오피스텔이었다. 일년전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서울엔 한파가 불어서 더더욱 추웠다. 복층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으나 일주일 만에 따듯한 온기가 흐르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거실이자 안방이자 부엌이 되는 공간을 좋아한 이유는 꽤 유용한 아이리쉬 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의 명칭의 유래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불려진다. 이 집의 가장 큰 장점 이었다. 나는 그것을 사랑의 테이블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집의 가장 큰 단점이 간혹 우리를 괴롭혔다.
냄새의 습격. 처음엔 간혹이었다. 옆집인지 아랫집인지 모를 곳에서 음식 조리를 하면 그 냄새가 유입되었다. 한 달 반 전 이사를 결정하고 난 뒤는 그 빈도수가 높아져서, 빨리 떠나고 싶었다. 층간 소음은 안 겪어 봤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 였다. 그 냄새의 진원지는 어딘지 모르지만 분명 반찬가게를 하는 사람이 이사를 온 모양이다. 이 집을 보러 온 사람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함을 자책하였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짐을 놓을 공간만을 유심히 보더니 덜컥 우리 이사날에 들어온다고 계약을 했단다. 이사짐이 크로스 되는 마지막 찰나, 내게 인사하는 그녀를 다시 보고나니 내심 안쓰런 심정이 가득했다. 첫날밤. 분노와 후회의 밤으로 점철될 것으로 예상되니 더더욱.
이제 모든 물건들이 안정을 찾았다. 아마도 일년하고 + ? 달을 여기서 살 것이다. 다음 이사에는 동쪽으로의 이동이 예정되었고, 풀 사이즈 아파트와 향후 터전이라 부를수 있는 신도시에 정착한다. 그러기에 앞서 이 곳의 삶을 영광의 나날들로 만들리라. 창밖으로 펼쳐진 황량하지만 역동적으로 펼쳐진 타워크레인들의 불빛이 지상에 내려진 별자리 같다. 고작 500미터 떨어진 건물에 이사왔을뿐인데, 새로운 지평이 펼쳐진다. 산책과 쇼핑. 모든것이 바뀌어서 재밌기도 하다. 이사 기념으로 길 앞의 작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 양 옆의 테이블엔 소개팅중. 와인이 무제한이라 들이 부었더니 혀가 꼬였다. 다들 열심이구나. 나도 열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