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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

76829117.1언제부턴가, 아마도 서른 중반을 넘어서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져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이듦에 있어서 어떤 특정 나이때(시기)를 지나면 더이상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고 하던데, 요즘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는 맞는말 같다. 열정적으로 음악을 들었던 시기를 향유하며 청춘이 소멸되는 과정을 하염없이 음미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것이 아주 단적인 예 일테지만 우리가 기성세대로 편입하는 과정일 것이고, 개인의 보수화는 그렇게 진행되는 것일게다.

나의 청춘의 음악이었던 록음악이 지금은 과거의 화려한 명성을 뒤로한채 공룡화석처럼 박물관에 유리되었다.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밴드의 형식뿐만 아니라 음악의 사운드와 메시지가 가지는 태도면에서 록은 죽은지 오래다. 젊음의 자유분방함을 대변하고 사회 진보의 기치를 저항의 몸짓으로 발버둥 치던 록의 시절에는 그 헛발질이 무의미하지 않았다.  체제의 억압을 넘어 젊음의 절규는 사회를 진보로의 방향으로 트는 파급력이 있었다. 나는 그 클래식한 혼돈의 시대가 그립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이라 겪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68혁명과 지미 헨드릭스가 쩌렁쩌렁하게 기타를 물어뜯고 기타로 마스터베이션 하는듯 현란한 몸짓 속에서 그 시대를 음미한다.

록이 죽은 시대에 우리는 ‘쇼미더머니’를 통해 지극히 개인화되고 황금만능주의의 사회 밑바닥 정신을 랩으로 소비한다. 현시대에 젊은이들이 록을 한다는건 대단한 사치이거나. 부유한 자제들이 취미삼아 하는 것이다. 기타와 앰프, 그리고 드럼 셋트 등등등. 시간과 돈, 적당한 공간이 기반되지 않는, 대도시를 촘촘하게 살아가는 현세대들에겐 록은 무리다. 반면에 힙합은 그야말로 비트와 랩 만으로도 충분하고, 비트머쉰이 없다면 그것조차 입으로의 비트박스가 가능하니 랩뮤직이야말로 젊음을 대변하고 소통하는 창구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힙합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탐탁치 않다. 의도가 어찌하건 ‘쇼미더머니’란 제목으로 대표되는 천박함. 흑인따라하기 사대주의 등등.. ‘정말 랩하난 기깔나게 하네’ 란 인상을 무색하게 한국의 힙합씬은 병신같다. ‘아마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소리 맞다.’ 나는 차라리 한때의 DJ DOC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얼마전 ‘쇼미더머니’의 상급 토너먼츠 공연을 보다보니, 어떤 진솔함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가사에 마음이 흔들리고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게 록이 가져야할 정신인데..’  록이 가져야할 모든 가치는 블루스에서 록으로의 이행과정에서 지미 헨드릭스 같은 천재중에 천재가 등장함으로써이다.

서점에서 이책을 보고 당장 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쌓아둘 공간도 없고, 부동산 관련 빚이 마음에 서려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보았다.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던데 그것조차도 부동산에 저당잡혔다. ‘오! 광개토대왕이시여, 오! 인간의 탐욕이여 ‘ 반납을 하기 위한 발췌를 위해 독후감은 짧고 간략하게 해야겠다. 어짜피 사설이 길어서 말이다.

항상. 지미 헨드릭스는 인간계의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계인 아니면 신내림 같은 존재 같이 여겨졌다. 그의 재능은 짧고 굵게 타올랐다. 이 책은 본격적인 자서전 이라기 보다. 그가 남긴 인터뷰, 편지, 가사, 글귀들을 편집한 책이다. 그래도 이 자료들은 모두 그의 진솔한 생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천재의 내면을 엿볼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내가 예상한데로, 그는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완벽히 자유로운 존재로서 신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 연결고리가 오래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가 들려주고 보여준 모둔 충격은 그대로 록의 역사가 되고 유산으로 후배들에게 전해졌다.

자연이던 신이던 아니면 내재한 우주적 기운이던 그것이 급격히 소멸됨을 느끼고, 스스로 죽음을 예견하고 있는 점이 인상 깊다. 1970년 27살에 죽었으니, 갑작스런 사고라 여길수 있지만, 그는 여기서의 해야할 일을 마치고 스스로 다른 행성으로 사라진것 같다.  어쨌거나 재능과 생명의 기운을 너무 한꺼번에 태워버린 자의 씁쓸한 여운이 록의 종말과 겹쳐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 나는 그 음악들을 그냥 좋아서 들었다. 거기서 뭘 얻겠다거나 그런 음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들은 게 아니다. 나는 전에 들었던 걸 따라 하지 않는다. 아기일 때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것과 같다. 아기일때는 써먹지 않는다. 자연스레 몸에 배게 한다. 그런 식으로 깡그리 흡수하고 성장하면 더 이상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 열중한 이후에는 자기만의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 너무 듣기만 하고 충분히 움직이지 않으면 제자리에서 맴돌게 될 것이다. ‘ 65

‘ 사람들은 우리를 별난 방식으로 받아들이지만, 난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건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계속 변화할 것이다. 이 삶을 살면서 하고 싶은 걸 계속해야 하니까. 정신과 상상력은 자유롭게 흐를 것이고 또 흐르게 해야 하니까.’  71

‘  음악에서는 가능한 한 빨리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게 음악의 개념이고 그 개념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나는 가사를 명쾌하게 쓰려고 의도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느끼는 걸 말할 뿐이고, 사람들이 그 의미를 갖고 논쟁하도록 내버려둘 뿐이다. 그 가사가 충분히 흥미로울 경우에 그런 거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사람들이 음악과 가사를 한 덩어리로 듣는거다.’  83

‘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만큼 난해해지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솔직해지는 것이다. ‘

‘ 음악은 온갖 곳으로 가야 한다. 그게 우리가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이유다. ‘ 118

‘ 우리는 우리 음악을, 사람들의 영혼을 강타하여 열어젖히기에 충분할만큼 분방하면서도 직설적인 음악으로 만들고자 노력한다. 충격요법이나 병따개 같은 음악 말이다. 사람들을 최면에 걸어서 자연 상태로, 순수하게 긍정적이었던 상태로 돌려보낸다. 마치 어린 시절에 자연스러운 황홀감을 경험했듯이. 이런 자연적 활홀감에서 깨어나고 나면 세상을 보다 선명하게 보고 다르게 느끼게 된다. 그건 온전히 영적인 경험이다. ‘

‘ 내 생각에 인류란 뭔가 믿어야 하는 존재인 것 같다. 사람들은 자기네가 어떤 식으로건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뭔가 따를 게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그게 진실한 것인지 아닌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 194

‘ 영적인 측면에 도달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길은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피상적인 것에 집중하지만 않아도 진정한 의미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세상이 엉망인 건 그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기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는 것에 지나친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