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릴적 꿈은 파일럿 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사진을 인지하기 시작한 건 백과사전 속 전투기 사진 이었다. 파란 하늘과 은빛 날개는 나만의 세상을 상상하는데 기폭제가 되었다. 빛 바랜 컬러 사진이라도 모든 사진 속 풍경들은 한 때의 찬란함을 갖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견인하는 비행기 사진으로부터 막연한 꿈을 키웠다.
어릴적 종종 시골에 내려가면 오산 비행장에서 출격한 전투기들이 굉음을 내며 창공을 내지르는 걸, 귀를 틀어막으면서 보았다. 젊고 강렬한 기운이 엄습했다. 본능적으로 대기를 가르는 에너지에 도취되었다. 당도할 젊음이 바로 눈 과 귀로 파고 들었다. 비록 파일럿의 꿈은 나쁜 시력으로 인해 일치감치 접었지만 하늘과 비행기는 언제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생의 한창 때가 지나도 나는 여전했지만 서른 즈음의 어느날 박물관에 놓여진 낡은 비행기 기체들을 보면서 소멸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 때 파란 하늘을 가르던 추억을 간직한채 퇴화되는 모습은 우리의 인생을 함축했다. 올라탄 콕핏에서 대지를 내다보던 동심의 꿈도 누런 먼지와 파리한 물때에 퇴색되었다.
누적된 시간속에서 역사를 말하고 있는 정밀 기체는 전쟁의 상흔과 힘의 역학관계를 촘촘한 리벳의 조형적 아름다움 속에서 보여 준다. 전장을 누비며 총알을 피하고 중력을 이겨냈을 조각지어진 판도가 향수로써 다가온다.
듬성듬성 꿈은 사라졌어도 우리 계속 날고 있는 거 맞지.
여전히 비상하여 세계를 속속들이 보는 것이 나의 새로운 꿈이다.
2007 토포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