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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ays Kyoto in Japan. 교토 여행기

 

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러나 이렇게 여행기를 쓰는건 왠일로 오래 걸렸다. 할 말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게으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억울한 기분이 든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3년 동안 내 손끝에 익숙했던 노트북이 어느날 갑자기 뻗어버렸다. 故신해철님이 사망한 다음날 이었다. 그날 아침 슬픈 심정으로 유투브의 토크쇼 출연분을 보던중 화면이 피식~ 암전이 되었다. 참담한 기분이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무언가 변화를 가져왔다.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수리비가 무려 120여만원 이었다. 메인보드를 갈아야 한단다. 정든 기기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었다.

일단 한달 동안은 필히 노트북이 필요해서 새로 주문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일본에서 사온 13인치 맥북과, 고장나 구석에 방치된 정든 15인치 맥북이 다시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다. 애플에서 그래픽 결함을 인정하고 무상수리 프로그램이 얼마전에 시행되었다. 그동안 쓰던 컴퓨터로 글을 꼭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은 쓴다는 건 나름의 어떤 제의식이 있는 것도 같다.

또 이런일도 있었다. 홈페이지와 티스토리 블로그를 워드프레스 홈페이지로 통합하려는 계획을 실행했고 완성했다. 그러나 곧 데이타베이스가 꼬여버려서 에러 메시지만 보여주었다. 서버호스팅업체가 외국이라 이런 전문분야를 직접 해결한 엄두가 안났다. 그래서 구축한 사이트를 폐쇄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든것이다. 이러다 보니 어떤 리듬, 그러니까 글을 쓰는 습관이 와해됐다. 사실 더 큰 이유는 연애를 하면서 일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글로 외로움을 달래던 경우가 사라졌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건 삶의 좋은 미덕이다. 흘러가버리는 물살위에 부표를 던져놓는것 같다. 인생이 점점 급류로 흘러가 버릴수록 언젠가 그 부표들은 여기까지 오게된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려줄 것이다. 지금은 조금은 후회가 되기도 한다. 지난 여름부터 내게 닥친 행복한 추억들에 꼼꼼히 마킹을 하지 않은것에 대해.. 그러나 이런 여행의 강렬함을 담은 사진을 볼 때 마다 반쪽의 미완성 같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더욱이 여행 사진은 한 장의 사진마다 촘촘한 이야기들이 꿈틀대었다. 사진들에 발을 달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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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일본 여행을 왜 교토로 갔을까? 처음에 든 생각은 따듯한 오키나와였다. 방사능 오염과는 별개의 장소 같았다. 하지만 오키나와 여행의 백미는 여름의 바다라는 생각과, 일본의 핵심을 보고 싶다는 생각하에 이내 교토로 마음이 기울었다. 일본을 방문하기에는 껄끄러운 심정이 여전했지만 그래도 도쿄와 떨어진 곳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리고 여행전의 설레임과 흥분은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폐해를 말끔히 지워버렸다.

더 잘 보고 느끼기 위해서 책장 깊숙히 숨어 있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 두권을 읽었다. 유쾌하며 명료하다. 국화와 칼 같은 책도 읽으면 좋겠지만, 한정된 시간안에 효과는 미지수다. 오래된 책이기도 하고, 오히려 만화책인 조선통신사가 흥미있었다. 여러 교토 여행기 책을 보았지만, 재미가 없었다. 여행을 앞둔 간접경험은 정보의 취득말고는 그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 유명한 나의문화유산 답사기도 그냥 그랬다. 마침, 일본편 3,4권이 교토였다. 그러나 다시 정리 차원에서 정독 해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이미 해가 다 져버리고 빛의 여운이 스산한 고독함을 드러낼 때, 가와라마치 하늘을 올려 보았다. 빨간 신호등은 왜소하게 빛을 밝혔다. 마치 사망신고의 복선을 드리운듯. 일본사람들의 표정이 어둡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 경제적인 장기 침체의 영향인가? 특히나 이런 인상은 버스에서 많이 느꼈다. 또 한편으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의 영향인것도 같다. 전체적인 인상은 역시 깔끔히 정돈되었고, 친절하고, 음식값이 비싸다. 초밥과 각종 전철(기차)는 최고였다. 이쁜 여자는 어렴풋 두번 정도 보았는데, 후시이이나리에서 본 한명은 여친과 같이 공감했고, 한명은 버스에서 이동중 자전거 타는 여인의 모습이었는데, 내 청춘시절 마음의 영화. 4월 이야기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교토 여인의 외모가 궁금했던 이유는 어떤 책에서 일본에서도 교토출신 여자들의 외모가 출중하고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4일 동안 판단하기에는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한국여자가 웃으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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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이 주는 기쁨은 이루 말할것도 없지만, 그중에서도 인공물이 가져다 주는 거대함에 매료되는것 같다. 뭐든지 크고 넓직하다. 물론 비행기 안은 좁고 불편하지만, 내 몸을 좌석에 구겨놓기 전까지 탁트인 활주로. 거대한 비행기, 넓고 긴 통로의 각가지 면세점. 등등은 찌든 도시의 해방구이다. 사진속 비행기는 내가 탈 비행기 이지만 다른 구역에 계류중인 에어버스사의 A380을 보았다. 사실 외양은 엘리펀트 맨 같이 기괴한 느낌이 드는건 사실이지만, 워낙 크고 웅장해서 우어어어~를 연발했다. 내 옆의 여인은 초딩의 보호자 같은 심정이었을 거다.

땅콩이 먹고 싶었는데 차마 땅콩 있냐고 말하진 못했다. 승무원들의 격하게 친철한 표정은 역겨웠다. 단순한 응대를 하는데도 억지로 오만가지 인상을 펼쳐보였다. 얼굴 근육을 과하게 쓰다보니 왠지 나이보다 늙어 보였다. 저럴 필요가 있을까? 그냥 본래의 편한 인상으로 서비스 하면 안되나? 그 미소 속에는, 좆나 힘들다. 가 역력했다. 최신 비행기는 점점 승객편의는 증대되나, 승무원들의 서비스 여건은 열악해진것 같다. 아주 좁은 통로에서 카트를 끌며 일하는 모습이 꽤 힘들어 보였다. 항공사의 수익성으로 인해, 그들의 일터는 더욱 비좁아 지고 있다.  안쓰런 심정으로 그들을 보다가, 옆지기에게 미리 말해두었다. 그런것들을 보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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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공항에 내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웰컴 투 방사능 월드 라고 내뱉었다가 재수 옴 붙을까봐 기쁜 마음으로 공기를 들이마셨다. 맑고 좋았다. 첫날이 가장 화창했던 날씨였다. 공항에서 교토역까지 급행으로 가는 열차표를 사기 위하여 JR티켓 오피스에서 이코카+하루카 예약프린트를 내밀었다. 예약 사이트에서, 이코카 카드의 두가지 디자인을 하나씩 고르는게 없어 2명 예약에 전통 그림 카드만 선택할수 밖에 없는데, 같은 카드인데 표지그림만 다른 두 종류 하나씩 가지고 싶다고 하자, 그럼 한명의 예약 신청서를 따로 써야한다고 한다. 우리 뒤에 대기줄도 긴데, 사소한 것 때문에 시간을 끌기도 그랬다. 내가 옆지기한테. 얘네들 유도리 참 없다.라고 했다. 그 남자 직원은 알아들었을 거다. 융통성의 일본말이 유도리 일테니까.  아마 이 부분은 사람마다 각자의 의견이 다를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의 규정이냐. 융통성이냐.

공항에서 바로 교토역까지 천엔으로 쾌적하게 가니 만족했다. 무엇보다 창밖에 펼쳐진 일본의 풍경이었다. 어디곤 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이 일억2천만 정도 인구를 짐작할 수 있었다. 스쳐지나가는 주택의 모습들에도 엿보이는 깔끔함. 우리와 비슷한듯 하지만, 오랜 집들의 운치가 있었다. 선명한 대기가 부러웠다. 비행기가 착륙을 할때나 기차를 타고 있을때, 간혹 제발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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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의 알바생은 진정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 듯 하다. 속마음은 어쨌든간에, 편의점은 색다르지 않다. 이미 고등학교때 일본문화의 개방속에 편의점 문화는 제일 먼저 들어왔었다. 덕분에 인스탄트 식품 셀수도 없이 먹었다. 되도록 생수는 에비앙만 사먹었다. 작은 용량만 팔고 있었다.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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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일본인들은 유명관광지에서 기모노를 많이 입고 다닌다. 아마도 입장료가 무료라고 들었다. 둘째날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에서. 교토를 여행하면서 좀 횟갈렸던게 저런것 이었다. 한자를 우리식으로 번역한 거랑 일본말 그대로 말하는 것이 혼용되었다. 대부분 책은 기요미즈데라 라고 하지만. 유홍준 교수의 책에는 전부 한자의 우리말로 부른다. 금각사. 은각사. 도월교… 하지만 저런 대표적 관광지 말고는 좀 구분이 안갔다. 그래도 긴카쿠지 도코 데스까? 이런 짧은 말을 할려면 일본식 지명을 알고 있어야 하는게 맞는것 같다.

첫날부터 토일렛또 도꼬 데스까? 등등등. 많이 써 먹어 보았다. 짧은 질문에 일본인들은 오래 정성들여 설명해 준다. 처음엔 알아 듣는척 하다가, 조금 길어진다 싶으면 눈동자에 촛점을 잃어가며 관광객 티를 팍팍 냈다. 그래도 그들은 일본어를 멈출줄 모른다. 그러다 정 안되겠으면 직접 데려다 준 경우도 있다. 짧은 질문을 하고. 틈틈히 하이. 하이. 소 데스까~ 하고 있으면 옆에서 보면 얼핏 대화라도 하고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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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엔 짜리 하루 버스 패스를 요긴하게 잘 사용했다. 버스 한번 타는데. 220엔 이니, 세번만 타도 이득이었다. 교토역에서 얻은 지도와 버스 노선표는 정말 요긴했다. 버스 노선은 처음엔 어려울지 몰라도 찬찬히 보면 목적지에 쉽게 갈 수 있다. 위 사진의 길은 가와라마치 부근 길이다. 이 길 상이 가장 번화한 쇼핑가가 밀집해 있다. 니시키 시장. 기온 거리. 폰토초. 가모강. 4일 내내 여기를 지나고 걷게 되었다. 밤에는 조명이 온화하게 켜져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현지인 집을 예약했다. 첫번째 묵었던 곳은 그야말로 현지인들 사는 동네의 작은 주택이었는데, 방은 다다미 방이었다. 나는 다음날 아침 이방의 창문을 스스스득 열어 보며 일본의 대단함을 이해했다. 별것 아닌것 같지만 이것만을 통해서도 일본을 알 수 있었다. 방문도 그랬지만. 창문은 유독 나무와 나무가 미끌리는 느낌과 소리. 마지막에 똑 소리 나게 아귀가 맞는 느낌은 감동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정교하고 세밀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창문에 발라진 창호지의 질은 엄청났다. 그 얇은 창문을 열자 한기가 확 밀려들어오는데 종이의 경이로움 자체였다. 중국에서 넘어온 도기. 종이 기술은 조선을 거쳐 일본에서 최고로 만들었다. 임진왜란때. 십만명에 가까운 조선인이 포로로 끌려갔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공이나 기술을 가진 자였다고 한다. 조선에서 천대 받던 장인들이 비록 잡혀갔지만 일본에서 기술자의 대우를 받으며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역사를 알면 알수록 씁쓸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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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즈데라로 가는길 상에 오랜 전통 가옥들이 밀집해 있는데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로 부른다.  교토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 일 것이다. 가부키 화장까지 한 저 사람들은 진짜 게이샤가 아니라 관광객을 위한 홍보 알바일듯 싶다. 아 유 리얼 게이코? 라고 물어봤었으면 어땠을까. 유정.주점이 밀집해 있는 기온거리에는 진짜 게이샤들이 출몰한다고 한다. 나는 폰토초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가 좁은 골목을 총총총 지나가는 게이샤를 본적이 있는데 위 사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신비하긴 해도 못생겼으므로 우어어어~하다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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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은 같이 가는 거다. 란 생각이 일깨워졌던 곳. 유명 관광지 바로 옆엔 이런 거대한 공동묘지가 있었다. 바로옆이지만 사람들은 여기에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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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피로가 누적되어 헬쑥해진 옆지기는 군말없이 같이 걸었다. 두세번째 날의 숙소는 기요미즈데라 근처의 조용한 집이었다. 그 집의 게스트는 우리밖에 없어 아주 고즈넉했다. 위치가 환상적이라, 이른 아침 사람이 없는 산넨자카. 기요미즈데라를 산책할 수 있었다. 또 오래된 카페, 이노다 커피집에서 먹었던 아침 메뉴는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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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아침, 기요미즈데라를 산책하고 나서 우리가 그날 첫 손님이었는데, 옆엔 사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한가롭게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의 삶이 잠시 궁금해졌다. 여행하는 동안 일본의 중요한 선거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선거장에서 우루루 나오는 모습도 보았다. 교토의 인상이 좋아서 기대했건만, 마지막 날 철학자의 길을 내려오고 나서 이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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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진속 음울한 표정처럼 뭔가 암울함이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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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 같은 왕이 살았던 교토고쇼 투어를 한시간 하고 나오니 그냥 오래된 나무들이 더 멋졌다. 고궁에 가면 좋은점이 나무의 기풍이 달라서이다. 종묘나 왕릉의 나무들 보다도 현충사의 나무들이 더 좋았다. 고궁 투어보다 훨씬 멋진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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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제 권력을 가진 자의 성은 이렇게 화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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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것도 신기하지만 이런 일본식 기와의 단아함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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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짓지 못한 글을 다시 이어서 쓸려니 1년전의 기억을 회수하는게 여간 녹록치 않다. 추억이 된 사진속의 시간들을 어렴풋이 바라다 보았다. 무척이나 행복했다. 옆지기와의 첫 해외여행의 마지막 날 비오는 철학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 히노데 우동집을 찾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생각해보면 완벽했던 우리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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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구름 잔뜩 끼고 비오는 날의 교토 보다는 화사한 봄날의 교토가 여행객한테는 더욱 좋겠지만 여기 철학자의 길에서 만큼은 낮게 드리워진 구름과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걸으며 사색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은각사를 둘러보고 철학자의 길을 걸어 길의 끝에서 히노데 우동을 먹고 서서히 오사카로 가는 전철을 탔다. 이제는 기억이 이렇게 밖에 남아있질 않다. 하지만 저 문장 사이에 촘촘히 박힌 감정은 말로 표현할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찍혀진 사진으로 그것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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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핸드폰 사진을 제외하곤 보이그랜더 베사 R 카메라와 후지필름으로 찍었다. 여행에 앞서 지인한테 빌린 카메라 였는데 필름 카메라의 손맛이 오랬만에 장난아니게 황홀했었다. 교토 여행후 당연하게도 영화 ‘게이샤의 추억’을 다시 찾아보았으나 영화 자체는 내겐 별로였다. 차라리 ‘라스트 사무라이’가 좋았고 더 좋은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란’ 과 ‘카게무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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