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너무 아름다워서, 행복해서, 저절로 눈물이 나는 경험은 흔치 않을 거다. 내가 느낀바로는 궁극의 행복은 무탈하게 자라나는, 해맑은 웃음으로 뛰어 노는 자식을 보는 일이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 인생의 가장 큰 선택은 아기를 가진 일이다. 가장 잘한 결정이기도 하다. 물론 천방지축의 아이를 보는 감정은 다각적이다. 기쁨과 불안 염려 즐거움과 피로가 혼재한 상황에서 다이아몬드 엣지에 반짝 빛을 발하는 순간에 내 영혼은 베인다. 너무 아름다워서 모든 고뇌가 상실된다. 이런 순간이 지속되면 그것이 천국일 것이다.
태어난지 천 일을 맞은 아들을 생각하며 감개무량한 기분에 휩싸인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들이 대견하다. 천 일 동안의 희노애락이 너무 식상한 표현이지만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주어 다행히도 노여움과 슬픔은 거의 없었다. 아이와 함께 부모도 같이 성장하는데 오히려 육체적 피로와 함께 마음의 평정을 유지못할때가 많았다. 자책하고 반성하며 스스로를 귀감삼아 나아간다. 모든게 처음이니까 힘듦과 시행착오는 겪을 수 밖에.
불혹의 나이라 불리는 마흔살이 넘어가면서 느끼는건 설레임, 열정같은 마음의 떨림이 많이 둔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런것의 대표 적인게 음악 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고 수집하고 한동안 그 음악에 푹 빠져지내는 일이 사라졌다. 음악이 사라진 삶은 단조로워졌고 침잠되어졌다. 젊은시절 한때의 음악만을 계속 듣는 다면 그것이 꼰대가 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보니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잭 화이트 이후로 새로 열정을 쏟은 뮤지션이 없었다.
얼마전 U2의 내한공연을 관람하면서도 느꼈던 바이다. 그렇게 염원했던 밴드의 공연을 보면서도 좀처럼 흥이 나질 않았다. 뭔가 순도높게 빠질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진것 같다. 그런 와중에 내게 테일러 스위프트의 발견은 다시금 삶의 희열을 가져왔다.
워낙 유명했기에 이름만 들어봤던 상태에서 NPR Tiny Desk 쇼케이스에서의 첫 인상은 모든면이 건강한 사람 같다는 인상이었다. 중음이 매력적인 그녀의 음색은 개인적으로는 아델의 음색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주얼과 마찬가지로 곡을 시작하기전 그 곡에 대한 사연, 만들어진 계기등을 유려한 언변으로 이야기 해준다. 싱어 송라이터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텔러의 능력이다.
그렇게 그녀의 노래들, 발매했던 앨범들을 파악할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노래 리스트도 만들 수 있었다.
I knew you were trouble. Blank Space. We are never ever getting back together. 22. Red. Me. Shake it off. Lover. The man. All too well. Back to December.
넷플릭스에서 본 이 다큐멘터리는 이제 그녀의 팬으로서 축복이었다. 한창때 엄청 말랐는데 지금은 건강에 깨달은 바가 있어 더 이상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 여리여리한 소녀에서 자신의 소신과 영향력을 발휘하는 진정한 여성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녀가 어린나이에 음악계에 데뷔하여 성공을 맞보고 성장하는 과정에 몇몇 큰 이슈들이 있었다. 카니예 웨스트의 그 짓거리, 성추행피해 재판경험 등은 그녀를 힘들게 했지만 내적으로 성장의 밑거름이 된 듯 하다. 인상깊었던 장면은 그녀의 애인이 촬영한 듯 한데, 사랑하는이 앞에서 통기타 치며 노래하는 장면들 이었다. 정말 아름답고 행복한 여인의 모습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외로워보이기도 하고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 많아도 그녀는 근본적으로 건강하고 올바른 자아를 가진 사람같다. 뭔가 씩씩하게 변해가는 그녀의 모습도 좋다.
코르크 마개를 가진 경우라면 와인이든 위스키던 오래 보관할 술은 눕혀서 보관해야 한다. 장농 위 오랬동안 붙박혀 있던 로얄 살루트는 20년 정도의 먼지를 쌓아놓았다. 아마도 큰매형이 아버지 선물로 갔다놓은 귀한 술인데 나는 집에 갈때마다 수시로 장농위에 진열된 박스들을 노려보았다. 이미 시바스 리갈 12, 18 등은 수차례 해치웠다. 헤네시 꼬냑과 로얄 살루트가 남았는데 아버지는 그동안 내 눈빛을 읽었는지 흔쾌히 하사했다.
밑이 펑퍼짐한 네이비색의 사기병은 고전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름에서부터 병의 디자인과 라벨까지 ‘나는 고급이다’란 심볼을 확 드러낸다. 요즘껀 병을 감싸는 천 주머니도 있다. 위스키는 호박색의 아름다움이 있다. 맑은 호박색의 농도를 보며 이 스피릿들이 오크통에서 숙성된 오랜 시간을 가늠한다. 잔에 따러진것 보다 병안에 든 술의 색이 더 보기 좋다. 사기병이 더 잘 어울리는건 무색의 소주나 보드카가 더 어울린다.
사실상 박정희가 밤마다 대학생끼고 마신 술이 로얄 살루트 라 한다. 대중들에게는 막걸리만 쳐먹는다고 했던 놈이.. 현장 검증에선 비싼 로얄 살루트 대신 시바스 리갈로 대체되어 보도되었기 때문에 시바스 리갈이 흔히 박정희가 좋아한 술이라 알려졌다.
나는 너무나도 준수하고 흠잡을때 없는 위스키에 별 매력을 못 느끼겠다. 발렌타인 21과 함께 딱 대중들이 좋아할 맛이다. 거칠게 핡퀴는 독한 양주의 느낌이 사라졌다. 이게 좋을수도 있고 나쁠수도 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일반적인 그렇고 그런 위스키의 전형. 보통의 기준에선 좋은 술이다. 모든게 적당하다. 너무 개성이 없어서 소주 마시듯 마셨더니 마개를 연 후 가장 단 시간에 마셨다. 잘 다듬은 술이긴 하다. 다만 내 입맛엔 + 뭔가가 없다는 거.
어제부로 치아의 신경치료가 끝났다. 도합 네번의 방문에 4시간여의 시술 과정 속의 나란 존재는 참 속절없이 무너졌다. 무아의 기분으로 입을 벌리고 따끔한 마취제를 맞고 온갖 기분나쁜 소리와 진동을 건뎌내야 했다. 때론 신경이 놀래 움찔하거나 짧고 굵은 비명이 아닌 소리를 내기도 했다. 긴장으로 발끝이 쭈뼛서고 허리는 잘록하게 아치를 그리며 들어올려졌다. 흡사 첫경험중인 여인이 생경함으로 제발 빨리 끝나기만을 고대하는 것 같이. 신경의 촉수는 등어리에 차가운 땀을 맺히게 했다.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바보스런 결정에 후회가 되기도 했다.
어릴적 치과에 가서 이 뽑는걸 세상에 가장 큰 고통이라 여겨 어떻게든 달그락 거리며 지냈던 나와 대략 5년전 살짝 깨진 어금니를 방치한 나를 책망한다. 초기 선제 대응이 중요했던 것인데. 관리만 잘 하면 괜찮을 거야란 만용을 부린 댓가였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건치의 유전자는 망상이었다. 관리의 소흘을 틈타 썩은 이는 차근히 도사렸다.
요즘 이상하게도 무언가 부서지고 깨지는 일이 잦다. 밥먹다가 코렐의 국그릇이 갑자기 주저앉아 깨졌고, 락앤락 유리 용기, 머그컵이 예상치 않게 툭 갈라지며 깨졌다. 식탁의 다리가 터지듯 갈라져 교체 수리를 받았고, 지금 빨래를 마치고 세탁기를 여니 먼지 필터가 체결에서 떨어져나와 내부의 플라스틱 기둥들이 부러져 나왔다. 무려 8년을 사용한 아이폰도 아들이 떨어트려 액정이 부서졌다. 주차중 옆차와의 접촉으로 난생 처음 보험을 접수했다.
액땜하는 걸까.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몇일 전 무언가에 홀려 이끌리듯 현대 수소 전기차 넥쏘를 계약했다. 원래는 풀 체인지를 앞두고 끝물 할인을 천만원 가까이 하는 BMW 420i GranCoupe SE 를 염두해 두고 있었다. 영롱한 스냅퍼 락 블루 색상과 프레임리스 도어, 낮게 잘 빠진 쿠페의 차체에 설레였다. 수입차의 브랜드 보다도 후륜구동의 스포츠 세단을 타보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하지만 우연인지 운명인지 넥쏘가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고 수소 전기차에 대해 알아가며 매장에 들렸는데 나올땐 계약서가 손에 들려 있었다. 계약금 10만원이고 넥쏘가 출고까지 오래 걸리는 차래서 가볍고 성급한 마음이 앞섰다. 정부 보조금과 세금 혜택등을 제외하고 실 구매가 4천이 조금 안되는 비싼 차임에도 선뜻 결정할 수 있는 배경엔 미래의 기술과 친환경에 대한 나름의 발로였다, 아직은 수소 충전소가 많지 않아 불편함이 예견되더라도 최소 10년을 쓸 차를 진보에 베팅하는건 맞다고 생각한다. 미세먼지를 줄이려는 개인의 작은 노력에 하루 빨리 수소 인프라의 확충을 고대하는 바다.
어제 TV채널을 돌리다 보니 이제 잘 안보는 JTBC 뉴스룸에서 재즈 싱어 나윤선의 인터뷰를 하더라. 잘 모르는데 유럽쪽에선 인지도가 상당해 보인다. 인터뷰에 이어 라이브 공연을 한곡 했다.
내가 처음 팝송을 접하고 좋아했던 가수는 여자 팝가수였다. 80년대말 티파니, 데비 깁슨, 마티카의 노래를 들으며 귀와 감성이 틔였다고 할까. 그 후로 점차 밴드 음악, 록음악을 좋아하게 됐지만 근본에 깔린 감성의 취향은 여자 보컬의 그 무언가(아련함) 이다.
청소년기 당대의 디바는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온, 머라이어 캐리 등이었다. 마돈나, 신디 로퍼들은 바로 앞선 세대 였고, 시네드 오코너는 변방(아일랜드) 느낌이 강했다. 90년대에 들어서 독보적인 개성의 여자 보컬이 득세했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크랜배리스의 돌로레스 오리오던과 앨라니스 모리셋트, 포 넌 블론즈의 린다 페리, 노 다웃의 그웬 스테파니 등은 너무나 특출했다. 수잔 베가와 다이도의 단아한 음색이 좋기도 했지만 흑백 티비 화면속의 조안 바에즈의 청아한 포크송에 마음이 심쿵했다. 아무래도 춤추는 팝 가수 보다는 기타 치며 노래하는 싱어 송라이터에 끌렸다. 리사 로엡의 stay (I missed you) 도 무척 좋아했던 노래다.
사족이 길었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최고의 여성 싱어 송라이터는 쥬얼 이다. 대학생때 처음 쥬얼의 노래 Foolish game 을 듣고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녀는 1974년생. 요즘의 아델이나 테일러 스위프트 보다 훨씬 연배가 높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쥬얼의 음악을 나와 비슷했던 누군가의 추억 공유로 다시금 홀딱 빠져버렸다.
유튜브에서 위 공연을 감상하며 나는 마음이 정화됨을 느꼈다. 예술의 신을 영접한 기분이랄까.
소비재 중에 가장 비싼 것 중에 하나가 자동차 일 것이다. 집 다음으로 란 말이 선행되었어야 정확한 문장이 될려나. 요즘은 자동차의 공유서비스가 활성화 돼서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하지만 애기가 있는 상황이면 자동차는 집만큼 중요하다. 안전과 편의 그리고 사용빈도 면에서 소유하는게 맞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자동차를 참 좋아했다. 취학전 심심하면 도로가에 앉자 지나가는 차들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각각의 차들의 얼굴이 캐릭터가 있는 사람 얼굴같이 느껴졌다. 푸근한 엄마같은 시내버스에 하얀장갑을 끼고 한 손으로 매달려 출발 신호를 똑똑 두드리는 버스안내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만원버스를 다루는 그들의 능숙한 솜씨에 나는 반했었다. 우리 엄마가 버스안내양이었다고 친구한테 거짓말한 기억도 시커멓고 매캐한 디젤 매연도 눈에 선하다.
부모님은 평생 뚜벅이로 사시느라 우리집은 가족같은 차에 대한 추억이 없다. 중학교때 이사한 집의 방 한켠에 산더미 같이 쌓인 자동차생활이란 잡지를 보며 차에 대한 지식(관심)을 습득했다. 포르쉐911과 동그란 쌍헤드라이트인 80년대 BMW M3는 드림카 였다. 마력과 토크, 최고스피드가 저절로 외워졌다.
차에 대한 관심은 실제 소유하고 운행하면서 점차 없어졌다. 아무리 멋지고 비싸다 해도 차의 본질은 이동수단이고 그것의 효율에 대해 현실적인 관점이 생겼다. 지금 타고 있는 차가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며 그나마 친환경 이어서 더욱 그런 생각이 확고해 진 것 같다.
그래서 처음 눈에 들어온 차가 볼보의 왜건이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차종이 왜건과 해치백인데 나는 이런 차종을 최고로 친다. 현대 i40는 이미 단종됐고 볼보의 신형 V60크로스컨트리가 막 출시됐을때 매장에 보러 갔는데 의외로 아무런 감흥이 안 생겼다. 최상의 나파가죽과 심플한 인테리어의 고급감에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혼다 어코드를 보았는데 오히려 낮은 차체와 수더분한 인상의 인테리어가 좋았다. 기대치 않게 꼿혀서 얼마 후 시승까지 했는데, 주행 감이 참 좋았다.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이래도 부족함이 없었다. 파란색 어코드를 다음 차로 정했었다.
그 사이 일본의 도발이 시작됐고 아쉽지만 머릿속에서 지웠다. 난 평생 아니 대를 이어 철저히 일본불매 할 것이기 때문에 논의의 여지가 없다. 엊그제 오랜만에 본 친구의 렉서스 es300 을 한시간 가량 탔는데 잔망스럽게도 좋았다. 카메라 처럼 대안이 없는게 아니니까. 더 눈을 돌려보자.
푸조의 스페이스투어러는 가족용 차로 딱 좋다. 2열 좌석 세개가 독립적인 좌석을 이루고 있고 뻥뚤린 시야에 내부가 넓다. 하지만 디젤 엔진이란점. 미션 변속의 느낌이 요즘차 같지 않다. 한달에 30대 정도 밖에 안 팔려 주문생산 방식으로 판매한다는 현대의 i30. 거리에 흔히 보이는 차가 아닌데 이 차의 뒷모습은 내 눈엔 최고로 이뻤다. i30 N line을 시승했는데 주행감이 엄청 좋았다. 운전하는 재미가 솔솔. 하지만 뒤에 앉은 가족은 하드한 서스펜션과 약간 좁은 공간에 손사레 쳤다. 작아보이는 외관 디자인도 우리나라에선 감점요인인것 같다.
바로 이어서 기아의 니로 하이브리드를 시승했는데 직전의 i30이 너무 인상깊어서 아무 개성없이 느껴졌다. 아내는 볼보의 S60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지만 볼보는 왠지 왜건으로 가야 맞는 이미지다. 그런 와중에 테슬라의 모델3 까지 출시를 앞두고 있으니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는 충전시설이 없어서 일단은 제외했지만 모델3의 매력과 잠재력은 대단한 것 같다. 테슬라의 주식을 사고 싶을 정도로 혹 했었다.
혹자는 차 구입전이 가장 행복한 상태라고도 하는데, 차를 좋아하지만 행복하지만은 않다. 당연히 적정 예산안의 선택 때문에, 나는 차에 대한 허상동(허영심, 상류층, 동경)은 전혀 없다. 고장 잘 안나고 사고시 신체를 지켜줄 튼튼한 차를 원하는데 결국 이런 기본에 충실한 차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라 하는 벤츠와 BMW다. 유일한 후륜 구동 핫 해치였던 BMW 118D를 시승했을때 자녀만 없다면 이게 딱이다란 생각을 했다. 연비좋고 운전하기 재밌는 차였다.
쌍용의 신형 코란도는 이쁘긴 한데 기술이 너무 떨어져 시승도 포기했다. 르노삼성은 삼성때문에 아예 관심밖이고 쉐보레는 복불복인것 같다. 어짜피 털고 나갈 회사. 폭스바겐, 아우디는 되게 미운 회사라 제외. 지프의 레니게이드는 이쁘긴 한데 품질에 대해서 랜드로버나 재규어 만큼 까진 아니더라도 혹평이다. 미니의 클럽맨이나 컨트리맨은 세대가 교체되어야 고려 가능하고, 결국 내년으로 넘겨 i30 페이스리프트를 지켜보며, 벤츠의 A와 B클래스 신형 혹은 새로 나올 GLB를 기다려야 겠다.
가격이 적당하게 나왔으면 좋겠지만 여차하면 보조금 받고 모델3로 갈지도. 몇일전 아는 사람이 보조금 받고 자가 비용 3천8백 정도에 스탠다드 레인지 받는다는 말에 귀가 움찔했다.
쪼잔하게도? 이 영화를 보고 와서 집에 있는 사탕류를 감춰버렸다. 요즘들어 아들이 단것에 너무 집착을 보여 어쩔 수 없이 하나만 하나만 하는 귀여운 손짓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금지하면 욕망을 낳는다지만 계속 먹게 내버려 둘 순 없는 처지. 자식을 키우며 사소한 것에도 딜레마에 맞닥뜨린다. 하지마. 위험해. 그건 안돼. 를 수십번 반복하게 되는 현실, 과연 나는 아들을 위해 잘 하고 있는 걸까?
얼마전 보았던 벤 이즈 백이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입장에서 서술하였다면 이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의 심층적 관계를 더 깊이 파고든다. 마약중독자 가정이 어떤 고통을 받고 인내하는지를 다룬 쌍둥이 같은 영화라 같이 보는걸 추천한다.
영화를 보면서 눈가에 눈물이 번져나갔다. 아버지의 심정에 빙의 되어 안쓰럽고 먹먹하고 가슴이 찢어졌다. 저렇게 이쁜 아이들이 약물에 빠져 좀비처럼 변해가는걸 목도하면서 영화속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왜? 왜?를 화두처럼 묻게 된다. “네가 중독된 게 내 잘못이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나서 내 나름의 결론을 냈고 지금은 원작인 책을 보고 있는데, 영화에서도 표현됐듯이 부모의 이혼이 남긴 상처들이 아이의 마음에 큰 구멍을 낸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5살 밖에 안 됐는데 엄마 만나러 왔다갔다 혼자 비행기 타야하는 삶. 아빠가 새엄마랑 결혼할때 소년의 표정이 말해주는건 가슴속 불안, 공허와 결핍이 눈에 비춰졌다.
직전에 보았던 벤 이즈 백도 그렇고. 커트 코베인의 삶도 그렇고 부모의 이혼이 가져온 아이들의 상처는 무언가 중독적인 것과 결부된다. 파멸적인 록 음악에 심취하기도 하고 그림이던 게임에 탐닉하기도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구할수 있는 미국에 널린 마약은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것 같다. 미국이 살기 좋아보이지만 그 사회의 얕은 이면에는 마약의 구렁텅이가 어디든 도사리고 있다는 무서움이 몸서리 쳐진다. 남미에서 북미로 공급되는 마약을 보면 그 옛날 남미문명을 난도질 했던 백인들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이, 백인 중산층 가정에 중독자들이 유독 많다고 한다. (러스트 벨트의 기업들이 재가동하면서 취업하는 백인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약물 복용건으로 건강 검진에서 많이 탈락한다고)
음악과 사운드의 활용이 탁월하다. 아들 닉 쉐프의 방에는 너바나와 멜빈스 포스터 등등이 있었는데 실제로 너바나의 territorial pissings 이 흘러나올때 10대 때의 나의 내면을 생각나게 했다. 공허함에 다양한 록 음악을 탐닉하던 그 때의 나는 호기심에 담배를 입에 댔지만 미국의 아이들은 마리화나를 시작하고 점점 더 강력한 무언가를 찾아나가는 것이다. 관문이론은 맞다.
분명 마약을 대하는 사회적인 풍토가 확실히 다른것 같다. 60년대를 거친 그들의 부모세대들은 각종 환각제. 마약류에 탐닉하던 혁명적 세대였다. 그들의 대중(음악)문화는 어쩌면 환각상태의 결과물이다. 비틀즈도 그러했고 미국의 전직 대통령 들도 젊을땐 그랬다고 한다. 문제는 그 때의 마약보다 현재의 마약은 훨씬 사악하다고 한다. 코케인, 헤로인등은 성분이 더 강해졌고 영화속 아들이 탐닉하는 크리스탈 메스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히로뽕, 필로폰, 메스암페타민이 다 같은 걸 지칭한다는걸 알았다. 아버지가 아들의 문제를 파악하려 공부하고 전문가에 자문하며 심지어 스스로 슬럼가에서 약을 구해 복용해 보기도 한다. 개인이 가진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으로 선택한 약물을 단지 범죄가 아닌 질병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우리와는 확실히 다르다.
영화 보는 내내 내가 사랑하는 뮤지션 존 프루시안테가 떠올랐다. 그렇게 어려운 중독을 떨쳐버리고 비상했던 그의 눈부신 과거와 현재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벤이 돌아왔다. 제목대로 벤이 돌아왔는데 긴장감이 흐른다. 그는 약물 중독 치료를 다 마치기 전 집에 돌아온 것이다. 일년전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집에 돌아와 사고를 친 모양이다. 엄마는 일면 아들을 반기지만 내심 불안하다. 불안과 초조의 눈초리. 77일째 약을 끊은 아들을 믿어 보지만 결국 중독자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내용은 하루동안의 소동이지만. 마약중독자의 가정은 단순하지가 않다. 중독자를 둔 가족이 얼마나 힘들지를 엄마역의 줄리아 로버츠와 아들역의 루카스 헤지스의 명연기에 가슴이 절절하다. 다 포기해도 엄마만은 아들을 끝까지 믿고 지키려 노력한다. 피눈물 나는 헛된 수고와 기대의 반복. 그 심정의 절박함이 긴장감을 만든다. 그가 다시 마약을 할까 말까 아슬아슬하게 몰입감이 질문하게 된다. 왜 (그들은) 그토록 마약에 취약할까?
이 영화에 이어서 현재 개봉한 뷰티풀 보이를 보면서 아버지의 심정으로 울었고 중독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60
영화 속에 그려진 날의 전날에도 다음날에도 그 사람들이 거기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영화관을 나온 사람으로 하여금 영화 줄거리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내일을 상상하고 싶게 하는 묘사. 그 때문에 연출도 각본도 편집도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1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차를 바꾸려는 계획이 있다. 십여년간 차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2004년 2월에 신차를 사고 한 5년간은 자동차 동호회 사이트에서 줄기차게 정보를 얻으며 왠만한 부품 교체는 내 손으로 했다. 점화 플러그, 점화 코일, 배터리, 도어 캐치, 흙받이, 전구, 필터류 등. 직접 할 수 있는 부분을 스스로 했을때 별 것 아니지만 차에 대한 애착이 강화된다. 부품을 지속적으로 갈아주면 계속 운행이 가능하나 문제는 철판의 부식이다. 내가 제대로 관리 못 한 부분도 있지만 2007년 이전의 현대/기아 차의 녹은 유명하다. 이 것은 안전에 관한 치명적인 염려를 일으킨다. 생각보다 내 차는 뒷바퀴 휠 하우스 쪽 부식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찍히고 찌그러진 곳의 도장이 깨져 녹이 생겼다. 당장 철판이 보여 부식이 안된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 찌그러진 꺽인면의 도장이 갈라져 녹이 생길 수 있다. 차량 외관은 사소한 것이라도 방치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반면에 16만 5천 킬로미터를 뛴 구동계는 너무 멀쩡하다. 사실 몇 년 더 타도 괜찮은데 아무래도 자체의 안정상 이라는 이유가 크다. 차량의 운영중, 큰 고장이 발생하여 수리비가 들진 않았다. 다 교체 기한이 되어 발생하는 유지, 보수 비용 정도 였다. 하지만 구입 초기에 트렁크 쪽으로 물이 새는 것은 국산차의 품질/인지도에 대해 ‘역시나’ 하는 한탄이었다. 보증수리야 내부의 씰링을 다시 처리하는 단순한 수리래도 이 회사에 대한 이미지는 안 좋아졌다. 2년 보증기간에 머플러의 녹이 많이 올라와서 새로 바꿨고, 뒷 바퀴 한 쪽 캘리퍼를 교환했다. 휠 얼라이먼트도 예방 차원에서 받았고, 주유구 뚜껑이 안 열려 단순 수리도 받았다. 고장이라기 보다는 보증기간안에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서비스를 받았다. 내 주장을 강하게 어필해야 할 때도 있었고 그로인해 상기된 기분에 놓이기도 했다.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조금은 파이팅한 자세로 나가야 한다는 피곤한 진실이 한국적인 삶인가.
이 차를 처음 우리집에 놓았을때 엄마는 실타래와 명태를 예비 타이어함에 놓았고 네 바퀴에다 막걸리를 따르는 제의식을 가졌다. 공산품이지만 우리 가족이 된 신고식, 그 마음씀에는 사물에 깃든 영혼을 일깨우는 면이 있는것 같았다. 이 안의 생명들을 잘 보호해 주시라 하는 염원.
가정의 한 일원(구성)으로 처음 새차/첫차를 맞이하는 그 기분은 묘한 설렘에 하루종일 차 생각 뿐이었다. 15일 동안 임시번호판 달고 틴팅도 안 한 맨 유리에 친구들 태우고 제부도,대부도 갔던 추억, 부터 헤아릴 수 없는 ‘이 차와 함께’ 한 기억들이 명멸한다. 차는 그런것이다. 손기름에 반질반질 윤기나는 스티어링 휠의 가죽과, 백내장 온듯한 헤드램프의 뿌연 불투명도 등등은 오래된 백자가 녹록치 않은 삶의 시간을 함유하고 있어 아름답듯이 내 눈엔 아련한 시간의 흔적으로 보인다. 요즘 차를 탈 때 마다 우수에찬 향수에 젖어 음악에 기분을 내 맡기지도 않는다. 아직은 생생한 엔진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도 하고. 휠 하우스에서 올라오는 타이어 노면 소음, 꿀렁이는 하체의 작은 소리에도 신경을 집중한다. 내리면 한 번 더 뒤돌아봐 확인하고 마음을 전한다. 수고했다고 , 그동안 고맙다고. 아마도 언젠가 폐차장이라도 보내면 대성통곡할 각이다. 정든 애마를 떠나보내는 예행 연습은 차를 배경으로 가족 사진을 많이 남겨야 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 한다.